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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같은 정치적 맥락 속에 있는 한,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차이"
나 "여성의 문화"에 대한 주장들이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될 수 있는실제적 위험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런 주장들이나 그것이 열어 준 지적 지형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정식화를 할 때, 그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분명히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크맨이 조심스럽게 정식화한 내용은 평등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가장 안전한 방향임을 함축하지만, 그녀는 또한 차이를 전적으로 거부하고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그것이 어느 쪽인지가 문제다. 밀크맨의 양가적 태도는 법이론가인 마사미노우가 다른 맥락에서 "차이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의 일례다. 종속 집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차이를 무시한다면 "잘못된 중립성을 방치하게"
되며, 차이에 집중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강조하게 될 수 있다고 미노우는 지적한다. "차이에 집중하는 것이나 무시하는 것 모두 차이를 재창조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차이의 딜레마다."- P292
평등론은 어떤 명시된 목적을 위해 명백하게 서로 다른 사람들을 (동일하지는 않지만) 동등하다고 간주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이용법에서 평등의 반대말은 불평등 또는 부등가, 즉 특정 목적을 위해 특정상황에 놓인 개인들이나 집단들 사이의 통약불가능성noncommensurability)된다. 그래서 민주적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동등함을 갖추고 있느냐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시대별로 자립성이나 자산의 소유, 인종이나 성별 같은것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평등이라는 정치적 개념은 차이의 존재에 대한인식을 포함하며, 실제로 이런 인식에 의존하고 있다.- P300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댈 곳이 모두에게 좋은 다원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규범적으로 구성된 그대로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포용하는 데서 찾을 수는 없다.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포함의 유형들 - 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P306
역사학을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에 대한 연구로 인식하는 견해는 그속도와 형태는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단선적이고 보편적인 과정을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단일성과 보편성을 가정함으로써 온갖 종류의 집단들을 역사 속에 포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들의 차이를 특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단일하고 원형적인 [인간 형태, 즉백인 서구 남성이 역사적 주체의 전형이 됐다.- P316
「역사학』에서 여성이 비가시화된 것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역사가나 미국역사학회 회원 중에 여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보편적 (백인, 앵글로 색슨) 남성 형상이 역사적 주체를 전형화하는데사용될 수 있다는 가정이 낳은 결과였다. 보편적 남성 형상과 다른 존재들은 그 형상에 의해 대표되는 동시에 배제되었기 때문에 사소하고 덜 중요- P326
한 것이 된 것이다.- P327
여성 역사가들의 다양한 전략들은 모두 차이의 문제를 개념적이고구조적인 현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차별의 조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거부해야 하는가. 또 별개의 여성 영역이라는 "현실"을 확정하지않으면서 어떻게 여성을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이 문제들은- P337
나에게 역설은 양자택일을 강요해 논쟁을 양극화하려는 광범위한 경향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과 집단, 평등과 차이가 대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대신에 오히려 이것들이 필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상호 의존적 개념이라고 주장하고자한다. 그런 긴장들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도덕적·윤리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구체적인 정치적 사례의 문제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1. 평등은 절대적인 원리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우연히 일어나는 실천이다.
2. 집단 정체성은 개인을 규정한다. 동시에 개인성의 완전한 표현 혹은실현을 거부한다.
3. 평등에 대한 주장은 차별의 결과인 집단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P347
거부하는 것과 관련된다. 바꿔 말하면, 차별의 전제가 되는 배제의 조건들은 포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거부되는 동시에 재생산된다.- P348
사실 나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비결정적이고 수수께끼 같겠지만 가장 다루기 힘들고 깔끔하게해결되기도 어려운 바로 그 문제들이야말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생각한다. 정치는 가능성의 기술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을 불가능을 협상하는 일이라 부르고 싶다. 이는 민주적인 사회에서 정의와 평등의 원칙에 가능한 한 가까운 해결책에 도달하려 하지만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체계, 새로운 사회적 배치, 새로운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그런 시도인 것이다. 오늘날 최고의 정치적 해결책은 집- P370
단이든 개인이든, 평등이든 차이든)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는 것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설명해 온역설들이야말로 물질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그 물질적인 것을 통해 정치가 구성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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