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제목은 일본인 장교가 한국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나왔는데, 작은 땅에서 거침없이 번성하던 야수들은 한국의 영적인 힘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때 호랑이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사람들을 북돋아줬다.
1910년대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김주혜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2024년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한국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는데 번역 작가의 역량인지 김주혜 작가의 역량인지 모르겠지만 번역이라는 느낌이 안 들고 한국어 자체로 느껴졌다.
이 소설에서는 옥희, 한철, 정호, 명보, 야마다, 이토 등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시대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소설의 제목 자체는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시선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니 그제서야 수긍이 갔다.
조선 시대 말만 해도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각종 민담이나 설화, 소설, 그림 작품에 등장할 정도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존재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수많은 밀렵꾼, 일본인들에 의해서 사라져서 1960년대가 되면 사실상 한반도에서 더는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소설 초반에 일본인인 야마다와 이토가 산속을 헤매다 어느 조선인을 구해준다. 하필 호랑이가 나타났는데 조선인 덕분에 일본인들도 무사히 산속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모태가 된 이야기이자 제목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이 조선인의 아들과 야마다가 나중에 극적으로 만나는데 야마다 덕분에 조선인의 아들이 살아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토는 장차 백작 작위를 승계할 후계자다. 전형적으로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논리를 가진 인물이다.
“우리가 이들을 현대화하고 발전시켜 주는 대신, 이들은 그 대가로 우리에게 쌀과 특산품, 이국적인 공물을 바치는 것 아니겠나? 골동 청자나 호랑이 가죽 같은 것 말이야. 지금 세계의 다른 곳들도 모두 똑같은 상황이야.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를 좀 보라고. 그들 모두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나눠 먹으며 더 큰 강대국들이 되어가고 있어.
아, 그러고 보니 여자들을 빼먹었군. 쌀, 호랑이, 그리고 여자. 이 세 가지야말로 조선 제일의 특산품이라니까.” 이토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행렬을 향한 박수와 환호에 가담했다.
옥희는 어린 나이에 기생 견습생으로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유명한 연극 배우로 성장한다. 한편에서는 은실, 월향, 연화, 단이처럼 기생과 권번들이 있고 정호, 영구, 미꾸라지처럼 밑바닥에서 시작한 이들도, 부모를 잘 만나 호의호식하는 김성수와 이명보가 있다. 그러나 김성수와 이명보는 서로 다른 삶을 산다. 김성수는 한국의 독립은 찬성하나 내부적인 자체 발생 행동은 경계하고(아래로부터의 민중 운동은 반대하는) 개혁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1920년대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자치주의자 지식인 중 한 사람을 표방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명보는 같이 일본 유학생활을 했지만 삶의 끝까지 한국의 독립을 꿈꾸며 혁명적 행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단이는 권번인데 화려한 젊음의 시절이 지나가고 나서는 마약에 빠지는 모습에서 토지의 봉순(기화)가 겹치기도 했다.
기생과 권번이 독립 운동에 많은 보탬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이도 그랬는데 명보가 운동 자금을 부탁하러 간 자리에서 김성수는 거절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인다.
자네에게 강요할 수는 없겠지. 그저 지난날 동경에서 자네가 눈독 들였던 그 게이샤한테 따로 집 한채까지 마련해 주느라 아낌없이 탕진했던 돈이 얼마나 되는지 회고해 보길 바라네. 그 돈이라면 지금 우리의 젊은 병사들에게 어떻게 쓰일 수 있을는지도, 그들은 우리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총 한 자루와 실탄을 얻기만을 바라고 있다네.
우리는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똑같이 살해하자는 게 과연 올바른 답일까? 그 모든게 너무 야만적이고, 그만큼 옳지도 않은 짓이야. 그래, 그런 무모한 폭력에는 이바지하지 않을 테다.
제가 드리는 이 군자금은 단지 저만이 아니라, 거의 평양 전체 기생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드리는 것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남자에게 술 따르고 수청 들면서 번 돈이고, 각자 은퇴 후 안정된 여생을 보내기 위해 평생 고이 모아온 패물입니다.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존재했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열기가 존재했지만 세계대전 말기가 되면 전쟁 물자 공출 등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허다하게 된다. 여유로웠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장 놀라운 사건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이 작은 바늘 하나가 툭 떨어지듯 시작하여 꼬리를 물고 연쇄한다. 길잃은 개 한마리의 출현만큼이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세월 속에 묻혀 흘러가는 여느 일탈로 말이다.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살고 사랑을 나눈다. ‘그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소박한 삶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그러면서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인간들이란!’ 넋두리를 하기도 하고 잔인한 시대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을 흑백으로 딱 잘라 나눌 수는 없는 법이야.’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1945년 드디어 해방의 문이 열린 날의 풍경을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전한다. ‘마지막 빗방울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댐처럼, 사람들이 숨 막히는 속도로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해방 후 드디어 조선이 하나가 되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믿었던 조선의 독립은 멀어져 갔다. 처음에는 남북의 국경을 넘는 것이 경성에서 인천으로 가는 것처럼 쉬웠다. 하지만 결국 국경이 폐쇄되고 초소가 설치되자, 사람들은 이웃과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한국 전쟁 전에는 친일 부역자의 처리가 있었고, 전후에는 남북 체제의 강화로 반공주의가 득세를 이루며 빨갱이 혐오가 시작되었다. 동백림 사건 등을 비롯한 사건의 조작으로 연루되어 피해를 본 이들이 생겼다.
소설 속에서 김성수는 마치 박흥식이나 김연수, 김성수 같은 인물을 떠올리게 하고, 이명보는 여운형이나 박헌영 등을 떠올리게 한다.
김성수의 혐의는 길고도 막중했다. 피고인은 평생을 일본인의 협력자로 살았으며, 피고인의 삼촌은 그 끔찍한 이토 히로부미 총독에게 직접 백작 작위를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김성수의 아버지는 일본인들과 공모한 덕택에 영지를 몰수당하지 않았다. 김성수 본인도 별로 나을 게 없었다. 그는 종로경찰서장, 일본군 고위 장교들, 그 외 일본인 세력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왔다. 그는 일본이 항복하는 당일까지도 일본군에 자금과 물자를 지원했다.
어느 날 밤,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야생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된 호랑이가 창경궁 동물원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였다. 6.25가 끝난 직후 부모를 잃고 새끼로 발견된 호랑이였다. 관련 생물학자 대부분이 이제 시베리아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 멸종되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너무나도 작은 땅덩이에서 5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마어마한 맹수들이 인간과 공존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한민족의 자연에 대한 경의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자연을 존중하여 함께하는 것이 한국 문화의 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신이 많이 피폐해진 지금, 우리의 본질을 일깨우고 싶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담고자 했던 생각이다. 오늘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가면 갈수록 이 땅에서 만날 수 있는 생물이 소멸해가고 있다. 기후가 변하면서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은 이제 다들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러 인간의 삶을 만나면서 내가 가진 지금의 시간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