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저작을 읽기 시작했다.
이는 루이 알튀세르의 저작인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읽기 위한 사전 작업이자 다른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근대 역사의 정치, 경제, 사회를 이해할 때 필수적인 인물이라 어떤 책이나 자료를 읽더라도 빠짐없이 거론된다.
한때 세계를 뒤흔들었던 마르크시즘은 이제 낡은 것으로 치부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후대 마르크스를 비판하고 나선 이들의 사상도 사실상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공산당 선언을 읽은(읽은 것이 맞나?) 뒤로 사실상 마르크스 본저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자본론>을 읽기 전 마르크스가 내놓은 저작을 출간순으로 읽어보고자 해서 그 중 <임금노동과 자본>, <공산당 선언>을 순서대로 읽었다. 두 저작보다 앞서 나온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는 말 그대로 포이어바흐(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의 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짤막하게 기록한 것이라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자기소외(세계가 종교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로 이중화된다)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사실은 일정한 사회형태에 속해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모든 사회적 생활은 본질적으로는 '실천적'이다. 이론을 신비주의(Mystizism)로 유도하는 모든 신비는 인간적 실천 속에서,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개념적 파악 속에서 그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낸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이 중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많이 언급되는데 이는 마르크스의 실증적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읽은 <임금노동과 자본>은 범우사 판으로 오래 전 전자책으로 사놓은 것이다.
해당 판본은 1891년 엥겔스가 1847년 마르크스의 경제학 강연을 바탕으로 한 논문을 수정하여 발간한 것이라고 한다(아마 대부분의 번역본이 엥겔스가 수정해서 내놓은 판본이 아닐까한다). 시간차가 꽤 있는데 주목을 해야 하는데 1891년이면 마르크스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엥겔스가 수정 작업을 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리라 보인다. 게다가 그동안 러시아에서는 농민 혁명이 있는 등 세계적으로 급변하는 흐름들도 엥겔스의 수정 방향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엥겔스가 수정을 가한 것은 ‘노동’과 ‘노동력’이라는 말을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노동력이란 부를 생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능력, 즉 노동하는 힘 전체이다. ‘노동’이란 이 노동력을 실제로 사용하고 발휘해 부를 생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노동력’은 인간에게 깃들여 있는 일하는 힘이고, ‘노동’은 그 힘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다.
노동과 노동력은 엄연히 다른데 마르크스는 이 말을 섞어서 썼다라고 엥겔스는 보았다. 원본에는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임금을 받고 그의 ‘노동’을 파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가 파는 것은 그의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1848년 2월 프랑스에서는 1789년의 혁명을 뒤엎고 보수 체제가 붕괴되었다. 3월 독일에서도 혁명이 시작되었으나 결론적으로 원했던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이는 산업 시민 계급이 노동자 등이 주도한 혁명세력를 경계하면서 봉건세력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노동자 계급은 부르주아지와의 계급 투쟁을 넘어서 민주주의를 일궈내고 나아가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들이 계급 투쟁을 해야 하는 이유와 자본주의 사회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을 담아내고, <임금 노동과 자본>에서는 같은 내용을 경제적인 측면으로 분석했다.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주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품의 ‘가격’은 사는 사람들과 파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수요와 공급, 욕구와 제공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상품 가격이 변동함에 따라 임금도 변동한다. ‘그러나 이 변동의 범위 내에서 노동의 가격은 생산비에 의해, 즉 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력의 생산비란? 노동자를 노동자로 유지시키기 위해, 또 노동자를 노동자로 길러 내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그러니까 핵심은 노동력은 상품이고 노동력에는 노동자로 만들어지는 데 생산유지비가 든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들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원료나 기계나 도구,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노동력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돈의 소유자의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은 자신이 만들어 낸 전체 생산물 가운데서 임금 등 일부분만 돌려받도록 되어 있다.
자본은 임금 노동을 전제로 하고, 임금 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한다. 양자는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가는 가능한 노동자에게서 적은 돈을 투자하고 이윤을 얻고 싶어한다. 그래서 임금과 이윤은 서로 반비례한다.
<공산당 선언>은 '선언'답게 자본주의 이론적 배경을 채우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한 구호적 성격이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되겠다.
공산주의자들은 도처에서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상태에 대항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했다. 이 모든 운동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소유 문제를, 그 발전 정도와 상관없이 운동의 근본 문제로 내세웠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모든 국가의 민주 정당들의 연합과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야만 달성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지배 계급은 공산주의 혁명이 두려워 전율할지도 모른다.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그렇다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는 정확히 어떻게 다른가.
① 벌써 모든 문명국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모든 생활 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와 도구(기계, 공장)를 소유하고 있는 대자본가 계급. 이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 또는 부르주아지이다. ② 생계에 필요한 식료품을 얻기 위해 부르주아에게 노동을 파는 일에 의지하는 완전한 무산자 계급. 이 계급을 프롤레타리아 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트라 한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이제까지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임을 선언하며 현재도 억압 계급과 피억압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는 비단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구별 뿐 아니라 성별, 인종 간의 구별로까지 확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놀랍다. 다만 지금 보기에는 그만큼 차별적 요소들이 여럿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수공 노동이 숙련성과 힘의 과시를 덜 요구할수록, 다시 말해 현대 산업이 발전할수록, 그만큼 더 남성의 노동은 여성의 노동에 밀려난다. 성별과 연령 차이는 노동 계급에게 어떤 사회적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나이와 성에 따라 드는 비용이 달라지는 노동 도구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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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숙련된 노동을 하고 여성은 숙련되지 않은 노동을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사적 관계는 오로지 관련 당사자들만의 문제이며 사회는 그것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 사회 질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아동들을 공동으로 교육하며, 이를 통해 종래의 혼인을 지탱했던 두 토대, 즉 사유재산을 수단으로 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과 부모에 대한 아동의 의존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시민적 결혼은 실제로 아내를 공유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비난할 수 있는 점은 기껏해야 위선적으로 감춰진 부인 공유제Weibergemeinschaft 대신 공식적이고 공명정대하게 부인 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현재의 생산 관계를 철폐하면서 여기서 파생된 부인 공유제, 즉 공식적 · 비공식적인 매춘도 사라질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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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라는 것이 결국 사적 소유 기반을 폐지한다는 개념은 알겠으나 과연 감춰진 부인 공유제와 공명정대한 부인 공유제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부인 공유제를 한다고 해서 매춘이 사라지나? 솔직히 헛웃음만 나왔다.
또한 지금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구절들도 많다.
민족들이 국가로 분리되어 대립하는 현상은 이미 부르주아지의 발전과 함께 상업의 자유, 세계 시장과 함께 그리고 산업 생산과 이에 일치하는 생활 관계의 획일성과 함께 점점 소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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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민족과 국가의 개념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유럽도 그렇고 미국, 중국도 국가적인 장벽을 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말로만 글로벌이 아닌지... 자본의 흐름은 국경을 넘나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고해진 것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현실을 바꾸고 개혁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철학의 역사가 대체로 ‘이념 속에서 현실’을 탐구하는 이상주의의 줄기와 ‘현실 속에서 이념’을 찾는 현실주의의 줄기로 나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마르크스의 철학은 철학의 커다란 한 줄기를 대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토대로 이념과 현실의 화해를 시도했다.
주요 저작은 <자본론>이나 두꺼운 분량은 물론이고 이해 자체가 쉽지 않을 거라 여겨져서 고민이다. <임금노동과 자본>, <공산당 선언>을 접함으로써 <자본론>을 요약 예습한 셈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덧)
자본론으로 검색을 하니 낯설지 않은 책이 나왔다. 오래 전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런데... 왜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