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이책은 참 재미있다.

명품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던 간에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때 한번쯤은 써먹을 만한 책이다. 루이비통과 에르메스의 탄생 신화(?)에서 현대의 전설이 된 샤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명품브랜드 딱 세개를 제시하면서 한 두시간에 금방 읽을 수 있게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명품에 대한 감식안을 나는 이책에서 얻었다.
한번을 읽으면 잼있는 책이지만 두번을 읽으면 놀라게 된다.
신변잡기류의 수필같은 저술속에서 저자의 놀라운 통찰이 번득인다.
1) 최고의 명품 브랜드라 할 수 있는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의 가격이 로고를 제외한 모든 사항이 동일한 모조품 가격의 10배인 이유는 이름(brand) 때문이라고 저자는 갈파한다. 오직 그 이름값에 10배의 가격을 현대인은 기꺼이 지불하는데, 그것은 뷔통과 에르메스의 이름이 프랑스 황실의 유제니 황후에게서 기원하기 때문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사실 그 특별한 존재란 단지 이름 아니었던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나 "에로티즘의 화신 마릴린 몬로"나 사실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신도 아니고 꽃도 아니지 않는가. 김춘수의 꽃은 그 이름에 대한 통찰 하나로 명시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2) 명품의 그러한 성격은 명품 브랜드를 상징 자본으로 만든다고 한다. 황실의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을 들여 향락과 사치를 누려야 하듯이, 명품은 그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이 소요된다고 한다. 명품 매장의 디스플레이는 엄청난 비용을 쓰면서 지속적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그 디스플레이에 끌려 명품매장에 들어가게 되고 매장은 마치 신전이나 황실과도 같은 특별한 감성적 체험을 제공하는 도구가 된다.
미디어의 등장하는 스타들은 과거의 왕자나 공주의 역할을 해야 하기해 명품 업체가 가장 먼저 접근하는 고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왕자나 공주 역할은 엄청난 자본과 경쟁이 수반되는 피로한 일이다.^^ 마치 과거의 황실이 겉으로는 호사스러우나 끝없는 전쟁과 정치적 암투로 얼룩진 이중적인 세계였듯이 말이다.
3) 또, 저자는 오리지낼러티(Originality)와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의 조화가 명품을 지탱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전통을 지키려면 새로워져야 하지만, 그 새로움은 전통을 계승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뷔통을 보면서 이러한 사실을 절감하곤 한다. 수없는 시도속에서도 뷔통은 특유의 모노그램과 뷔통만의 오리지낼러티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조화(?)는 원래 귀족들만이 사용해야 했던 희소품(brandless)이였던 명품이 대중시장의 제품(brand)으로 변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는 꿈을 꾸게 해주는 제품으로서의 명품에 대한 명확한 설명으로 보인다. 현대의 희소성은 차별화되지 않는 제품으로 넘치는 대중 시장의 존재 위에서만 성립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4) 마지막으로 명품의 진화 과정과 현대 소비 문명에 대한 저자의 고찰도 흥미롭다. 황실의 권위가 필요했던 뷔통과 헤르메스에서 자본주의의 물신 자체가 보증하는 브랜드로 탄생한 샤넬은 소비의 혁명이자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 기존 명품의 양식과 소재를 부정하고 자본주의(=모방과 확대 재생산)에 맞는 명품을 창조하려던 샤넬에게는 "짐이 곧 국가"였던 루이 황제가 아니라 "유행, 그것은 곧 나다"라는 현대인의 정체성 선언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생산력의 해방과 대중 소비 사회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는 또한 정체성의 상실과 혼돈으로 상징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누구나 평등하다는 이념은 이성의 영역일뿐 특별한 존재로서 차별화되고 싶다는 감성의 욕망앞에는 너무나도 무력하다. 뒤늦게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아시아인들은 공주와 귀족의 삶을 창조했던 프랑스와 프랑스 문물을 동경했고 그러한 동경의 사회적 표현이 명품으로 생각된다.
사실 그러한 동경은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1920년대에도 신여성으로 지칭되는 조선의 패션리더들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바빴고, 까르띠에와 뷔통은 그때도 존재했다. 기실 어머니가 쓰시던 샤넬 백에 반해 그걸 물려달라고 조르는 딸들이 한둘인가.
감성이 보다 발달하고 욕망에 솔직한 여성들에게 명품은 사치품이 아닌 꿈을 꾸게 해주는 인생의 무대 장치 같은 역할을 해주겠지. 사실 남성도 이러한 욕망에서 자유롭진 않다. 현대 자본주의 이전에는 남자들이 사치의 중심이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이러한 확신을 강하게 해준다.
개인적 차원에서 명품이 꿈을 꾸게 해준다면 사회적 차원에서 명품은 차별을 제도화하는 도구가 된다. 진품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에서 일차적인 경제적 계급을 표시해주고, 그러한 명품을 계속 살 수 있는지 없는지에서 계층내에 또다른 차별화를 만든다. 결국 그러한 명품을 무한히 소비할 수 있는 개인은 과거의 왕자나 공주처럼 현대 소비 경제의 최상층에 속하거나 그 최상층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존재여야 할테니까...
그렇다면, 명품은 진정 제품이 아닌 이름이자 상징자본이 된다. 명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계층을 의미할뿐 상품의 기능성은 논외가 된다. 그래서 100년전의 소재와 가방 구성에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진부함이 아닌 전통으로서, 평등한 대중에서 벗어나 귀족으로서의 차별화되는 포인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