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방황에서 건져 올린 불빛 하나
깜장눈사람 2003/12/0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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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튀튀하게 썩어가는 낡아빠진 판잣집, 외양간 위에 지붕만 대충 얹어서 방으로 고친 그 집에서……, 생쌀을 야금야금 훔쳐서 오물오물 씹어먹던 시절이 있었다. 맹물에 사카린만 타 넣은 멀건 국물에 맨 국수를 헹궈 먹는 것으로 점심을 때우느라 밀가루 냄새가 입에서 풀풀 나는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담임 선생님한테 죽도록 매를 맞고 돌아온 다음날 새벽, 속옷과 옷과 이불까지 질펀하게 오줌으로 젖어 있었다.
'어째선지 학교가 싫었고,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가 싫었다. 우리를 버려 두고 바다로 떠돌아다니는 아버지도 밉고, 날마다 밤늦도록 재봉틀을 돌리는 어머니의 퀭한 눈자위도,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공장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은분이 누나의 해쓱한 얼굴도…… 죽은 은매의 그 노루처럼 바알간 눈빛도 나는 싫었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 세상이 우리를 버렸다는 생각,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 이 세상에서 오직 우리 식구들만 버림받고 있다는 증오심…… 그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그리고 세상이, 아니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두렵고, 싫고, 미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인가를 향해 복수해 주고 싶었다. 고작 열 세 살짜리 내 영혼은 그렇게 조금씩 병들어가고 있었다.'(본문 중에서..)
고양이를 닮은 아이가 있었다. '고양이란 족속은 (겁이 많아) 꽤 신경질적인 편이야. 그래서 신뢰를 얻으려면 마음만으로는 안돼.' (유시진. '쿨핫' 중에서...) 그 아이의 첫인상이었다. 주장하는 말하기를 시켰더니, 주제는 '체벌에 반대한다'였지만, 끝에 가서는 '학교에서 주는 모든 종류의 벌에 반대한다'로 끝맺었던 아이, 서정성으로 가득 찬 소설 '별'을 신문으로 꾸며보라고 했더니 표제부터 '스테파네트 토막살해 당하다'로 뽑아 써내던 아이. 헤드락을 하면 두 손으로 얼굴을 푹 가리고 부끄러운 웃음을 웃던 그 내면 어디에 이토록 깊은 불신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을까. 부모의 이혼과 지독한 가난, 열 여섯짜리 아이가 다루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것들. 아이야. 그래서 그런 거였니? 그래서 불신의 벽을 쌓고, 그 뒤에 겁먹은 눈을 숨기고 있는 거니?
'그때 불빛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인간은 알고 보면 누구나 한 척의 배가 아닐까. 끝도 시작도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 그 어두운 바다 위를 떠도는 낡고 길 잃은 배들 말예요. 어둠이 내리면 세상의 어느 바다에서건 배들은 저마다 불을 밝히지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말예요. ……맞았어요. 아버지. 전 시를 쓰고 싶어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외로운 별들이 아닐까요? 어쩌면 스스로를 지탱할 힘조차 지니지 못한, 그런 못난이 별들 말예요. 그렇지만 아버지, 때로 우리는 항로를 잃고 밤바다를 떠도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멀리서 반짝이는 작은 불빛이나 등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 그런 시를 쓰겠어요.... 이제 비로소 추억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본문 중에서..)
'새 봄이 오고 새 잎이 돋아도, 나무에 난 생채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나이테에 옹이로 남을 뿐이다.' 나는 감히 너에게 내가 너를 이해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감히 너에게 지금의 이 고통도 단지 지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지금 네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들을 껴안으라고 말하지 못한다. 다만 '절망의 밑바닥'이라 할 지라도 '마주잡을 손 하나 있음'을 잊지 말기를, 또 그 손을 절대로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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