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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쌤과 책읽기

(중략)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나 베스트셀러 소설에 비할 숫자는 아니다. 그간 외면당했다고 생각한 시는 살아있다. 시를 소비하고, 그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여전히 크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음악과 함께 시를 올려놓는 네티즌이 많다. 일종의 ‘장식적인 욕구’다. 동시에 시를 향유하고자 하는 잠재된 욕구라고도 볼 수 있다.

느닷없는 시 타령이 어렵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시를 분석하는 방법은 열심히 공부했어도 ‘즐기는 방법’을 배운 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는 애초에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말랑말랑한 감성의 청소년기에 이미 ‘시는 어렵다’는 관념이 박혀서 그래요. 시는 능동적이고, 속도를 강요하지 않죠. 베스트셀러가 재미있는 이유는 속도감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능동적으로 소설을 읽더라도 결국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수동성이 있죠.”

시가 어렵고 당황스러운 이유는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자유’ 때문이다. 강요에 익숙한 일상에 길들여진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아무 강요가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독서와 감상이 가능한 시집 앞에 서서 망설인다.

“시 한 편을 백 명이 읽으면 감상도 백 개, 같은 시를 열 번 읽어도 각기 다른 열 개의 감상이 가능해요. 철저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르죠. 그 즐거움을 향유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삶의 질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사랑하고 싶으세요? 사랑받고 싶으세요? 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이 사랑의 능력을 복원하는 일이에요.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을 잃고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못 듣게 되면서 삶이 속박되는 거죠.”

24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소비하는 것은 무리다. 일상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기를 기대하는 것도 욕심이다. 하지만 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욕심없이 선선하게, 팍팍한 일상을 파고든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훌륭한 시인과 시를 동시대에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어요. 그런데도 한 번도 들춰보지 않고 사는 것은 억울하지 않을까요? 갖고 싶은 명품을 사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지만, 6천원짜리 시집은 영혼을 채워줄 수 있어요.”

어느 연예인과 똑같은 명품을 사면 순간 ‘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장난감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감흥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한 번 읽은 소설책을 다시 읽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 읽었을때의 감흥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을 펼쳐 읽어도 3분이면 읽을 수 있는 시는 음악보다 빠르고, 영화보다 쉽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깊어지는 ‘맛’이 주는 만족감은 명품에 비할 게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싶은 당신의 손에는 이제, 자기 계발서 대신 시집이 들려있다.

“잠깐이라도 삶의 템포를 정지시키고 자기를 바라보는 방법을 알아야 해요.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고, 시는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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