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OO아 선생님에게 항상 즐거움과 위로를 줘서 고마워,고3잘 보내고 대학생 돼서 즐거운 여행가길....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고3생활 가운데 있길 기도하며 2020.02.06.
경찬쌤 잘 지내고 계시나요,전 안타깝게도 부처님의 은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근데 전 부처님이랑 좀 더 잘 맞는 거 같더라고요.하나님과는 이제 쫑났습니다.
여하튼
교환학생 다녀온 걸 조금 정리하는 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겸 글을 써본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 전공교수님은 학문적인 부분보다도 경험에 좀 더 방점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 때문인지 여행만을 위해선 가기 어려운 곳을 몸이 안 좋더라도 꾸역꾸역 갔는데 그런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특히 시칠리아와 루흐마항이 많이 생각난다.
젊은 시절에 얻을 수 있는 경험이란 소중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김영하 작가가 그랬듯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언어와 말투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온정과 친절함이 있으며 그들이 동양인인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 그러한 경험들을 어른이 되고 그나마 감정이 생경하여 새길 수 있을 때 얻고 온다.
교환학생을 갈 땐 조부모로부터의 해방,부모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갔고 실제로도 잠시나마 해방을 맛보기도 했다. 엄마가 나에게 옮기는 그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니 내가 원래도 이렇게 잘 사는구나를 알게 되기도 하고 가벼운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다시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나는 물질적으로 조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가벼운 인연에도 아쉬워하는 마음을 안고 원래 있던 곳으로 애써 되돌아가려는 한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상상을 자주 했다. 책에서 나오듯‘리셋’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던 거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환학생이 확정된 이후 병원을 다니게 되면서 그 무렵부터 교환학생을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작가는 달아나는 것도 택해봐야 한다고 했지만 나의 경우 병원을 다님으로써 나의 방황의 끝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교환학생을 간다는 것이 다시 나의 방황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카뮈의 무덤이 있는 루흐마항에 갈 정도로 카뮈를 좋아하지만 그의 사상-사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과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 같다는 예감이 나를 덮친다. 아낌없이 삶을 소진시키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현재는 무엇인가.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나는 여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고 다녔다. 그리고 그쯤 계엄이 터졌고 그렇게 전공에 대한 애착이 수직하락하던 시점이었다. 뭐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다시 돌아갔어도 난 걱정을 했을 것이고 애정이 떨어졌을 것이며 다시 정신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내가 교환학생 신분으로서 할 수 있었던 건 열심히 발표하고 토론하고 공부하기, 그리고 많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기억을 얻기..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내가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만 산다? 그건 너무나도 무책임한 일 아닐까. 나는 이제 스물 넷이고 이미 휴학을 했으며 징징거릴 나이도 지났다. 부모로부터 벗어나기도 이미 그른 시점에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과 미래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건 죽을 때까지 내가 안고 가야 할 애착 고민들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러한 경험을 안겨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특히 교환학생을 함께 갔던 친구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 내 애착 인간 군상들에 추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있던 경험인 듯하다. 나는 정말 좁고, 심지어 그리 깊지도 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인데 추구하는 바와 다르게 나는 붙임성도 좋은 편이며, 인간관계 관리를 큰 무리없이 해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기질적으로 그리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 편이라 많이많이 지치고 힘들기에 항상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럼에도 내 레이더망에 들어오는 나의 애착 인간들.......내가 많이 좋아한다.
여하간에 교환학생을 돌아오고 난 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리 얘기하고 싶지 않은 일도 최근에 있었다. 나는 앞서 얘기했듯이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첫 번째로 있었고 교환학생으로서 외국에 있을 당시에는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두 번째로 했고 마지막으로는 한국 학교에 돌아와서 다시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갖는 중이었는데 그런 일이 최근에 생기고 나선 좀 다시 방황하는 길을 걷는 중인 듯하다. 그런데 참 웃긴 게 고등학교 3학년 때-그때도 참 힘들어하던 때였는데-맨 마지막 장에 색깔까지 칠하면서 줄쳐놓은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아마도 이때 분명하게도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슬펐기에 이 구절을 색칠까지 하면서 줄 쳤을 것이다. 2025년인 지금도 애써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당시엔 헤어짐에 서툴렀지만5년이 지난 지금은 이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있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과 분명히 다른 점이야 있지만 그리움도 결국에 시간에 희석되고,언젠가 새로운 만남이 과거의 만남을 추억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점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는 게 다행인 점이 아닐까 싶다. 덤블도어가 해리포터에게 해준 말이 기억나는데,위대한 마법사에게 죽음이란 그저 또 하나의 모험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되는 점이다. 이제 징징거리지 말고 방황도 그만하고 그만 슬퍼하고 온전하게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