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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배제된, 고도로 다듬어진 삶을 살기. 이상의 전원에서 책을 읽고 몽상에 잠기며, 그리고 글쓰기를 생각하며, 권태에 근접할 정도로, 그토록 느린 삶. 하지만 정말로 권태로워지지는 않도록 충분히 숙고된 삶. 생각과 감정에서 멀리 벗어난 이런 삶을 살기. 오직 생각으로만 감정을 느끼고, 오직 감정으로만 생각을 하면서. 태양 아래서 황금빛으로 머문다. 꽃으로 둘러싸인 검은 호수처럼. 그늘 속은 독특하고도 고결하니, 삶에서 더 이상의 소망은 없다. ... 굶주린 자의 음악. 눈먼 자의 노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방랑자의 기억. 사막을 가는 낙타의 발자국. 그 어떤 짐도 목적지도 없이. ...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요즘 생각을 잘 안 하고 산다. 딱히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약 때문일까? 그럴지도... 언제쯤 내가 약에 대해서 말할 날이 오게 될까? 누군가는 부모님 중 한 분은 알고 계셔야한다고 조언을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알아야 한다면 그건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잘 간직해온 마음을 몇 년 더 숨긴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짠하다고 그랬는데 사실 좀 놀랐다. 짠하다? 내가? 난 내가 단 한 번도 이런 면에서 짠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생각을 고치기도 했다. 내 목표는 대학교 졸업 전에 약을 끊는 것이다. 앞으로 일 년이 남았다. 내가 과연 부모님에 대한 내 감정을 갈무리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미련이 가득한 글을 그만 쓸 날이 오게 될지 모르겠다.
자살은 참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이만큼 개인적인 것이 없다. 감정을 낳은 환경, 그 환경이 사회로부터 비롯된 것일지 몰라도 개인의 천성과 능력이 환경을 감당한다. 사람의 기질은 삶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환경과 자신의 삶의 거리를 넓힐 순 있다. 내가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앞으로 찾아나가야한다. 그곳에 나의 낙원이 있을 것이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담백한 글을 남길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그날까지 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