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아시 경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을 받아들고 난 뒤에도, 나는 한참동안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읽을 짬이 나지 않아서는 아니다. 이 책을 읽어 버리고 난 뒤, 또 오랜 세월을 애타게 기다리게 될 것이 두려워서, 되도록이면 천천히 아껴 가며 읽을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책장을 펼치고 나니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치워 버리게 되었다.
앞 시리즈인 '셰르부르의 저주' 와는 달리, '마술사가 너무 많다' 는 제목부터 패러디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렉스 스타우트의 '요리사가 너무 많다' 라는 책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으로 모자라, 다아시 경의 사촌형으로 나오는 런던 후작은 아무리 봐도 네로 울프요, 런던 후작 아래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는 본트리움프 경은 보고 또 다시 봐도 아치 굿윈의 영국판(?) 이다. (다행히 아치 굿윈만큼 툴툴거리지는 않는다) 게다가 다아시 경과 런던 후작의 '천재적인 두뇌를 자랑하는 혈통' 의 강조는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형제의 관계를 연상시키며, 심지어 마술사 길드의 마스터의 미들 네임에는 누구나 다 아는 전설적인 마법사 누구의 이름이 들어 있다. 더 이상 언급하면 재미가 떨어질 테니 이 쯤에서 멈추겠다. 이 밖의 패러디들은 읽으면서 찾아 보시길.
책 곳곳에 숨어있는 패러디들이 우울한 주제를 다룬 살인 사건의 분위기를 적절히 희석시켜, '마술사가 너무 많다' 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등장하는 '런던의 콩스프같은 안개' 속에 가라앉지 않고 나름대로의 긴박감과 약간의 명랑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를 판타지풍으로 섞어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아시경 시리즈 최고의 장점인 독특한 세계관과 거기에 덧붙여지는 마술이라는 양념이 워낙 훌륭하기에 이 작품에도 앞서 나왔던 '셰르부르의 저주' 처럼 좋은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단편 작품이 주는 촌철살인과 같은 맛은 떨어지지만, 장편은 장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으니까.
그리하여, 이제 또 다시 다음 시리즈를 애타게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셰르부르의 저주' 리뷰를 쓰면서 했던 말을 되풀이해야만 하겠다. 대체 다음 권은 언제 나온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