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정녕 이런 도시일까. '범죄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사악하고, 기괴하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범죄 - ' 는 계속 이어져, 어느덧 파일로 반스의 일곱 번째 사건까지 왔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밴 다인 특유의 판에 박힌 듯한 서두는 이 소설에서도 여전하여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7번째로 쓴 장편소설 쯤 되면 시작을 바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밴 다인은 여러 가지 의미로 투철한 의지와 신념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처음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쭈욱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쯤 되면 유머러스한 느낌마저 든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반스가 해결해야 했던 그 '끔찍, 사악, 기괴, 그로테스크, 공포스러운' 사건들 중에서도 이 드래건 살인사건은 '그로테스크함' 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다.
드래건 살인사건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듯 한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는, 크리스티 풍의 추리소설과 약간은 비슷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그 지역에 내려오는 인디언의 전설과 맞물린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사건은 점점 우울하고 공포스러운 색채를 띠게 되지만,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해야 하나. 이번 작품에서, 밴 다인은 전기 6 작품과는 달리 수수께끼 풀이보다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살려 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밴 다인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괴기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으므로 유감스럽다. 오히려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기 위해 지나치게 장식을 덧붙인 모습이 엿보여, 밴 다인 특유의 간결함과 명쾌함이 많이 사라진 점이 아쉬웠다. 밴 다인 자신도 그 점을 느꼈는지, 드래건 살인사건의 뒤에 나오는 작품인 카지노 살인사건이나 가든 살인사건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지 않고 비교적 초기 작품 스타일로 회귀했다. 나름대로 반스에게는 애증이 쌓였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추리작가가 훌륭한 작품을 써낼 수 있는 건 6편까지가 한계' 라는 자신의 명제를 몸소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밴 다인의 작품 12편 중 8편을 읽었고 그중 6편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출판된 후기 3작품의 퀄리티가, 내가 읽었던 전기의 5작품에 확실히 미치지 못함은 아쉽기 그지없다. 그래도 전기 작품들에 비해 마음에 들었던 점은 도저히 인간 같지 않던 반스가 점점 인간화(?)되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 추리소설 자체로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원래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었던 반스라는 인물에게는 정이 들고 말았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참고로, 독자와 페어플레이를 하고자 하는 밴 다인의 노력은 여전하다. 드래건 살인사건은 내가 읽었던 8편의 파일로 반스 시리즈들 중에서도 독자에게 혼란을 유발시키는 장치가 가장 많은 편이지만, 어쨌든 밴 다인은 이번에도 독자들을 속이지는 않았으므로 '진실은 언제나 하나' 라는 진리를 염두에 두고 주의해서 읽어 나가다 보면 결말은 오히려 쉽게 보일 듯. 그러나 슬프게도 밴 다인의 이런 노력 때문에, 파일로 밴스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이채로운 소설이 될 뻔 했던 작품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소설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