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징조들' 이라는 멋진 책 한 권으로 테리 프래쳇이라는 작가에게 단단히 반해 버려서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쑤는 법에 대한 책을 썼다 해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봐 줄 용의가 있었지만,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디스크월드는 그 자체로 웃긴다. 성가신 생각 따위 떠오르지 않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웃으면서 봐 주면 되는 판타스틱한 판타지다.
세계관 설정부터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다. 거대한 거북이 등에 떠 있는 세계라니! 마치 고대 인류나 상상할 법한 근사한 세계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가의 패러디는 세계관의 설정에서부터 드러난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사각형이라, 끝없이 항해하다 보면 바다의 끝에 있는 절벽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여겼다. 지금 와서 보면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데 디스크월드의 세계는 정말로 그렇다. 이 밖에도 고대인들의 세계관의 패러디는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또한 단 한가지 마법밖에 못 쓰는 무능한 마법사 린스월드와, 그를 따라다니는 순진무구한 관광객 '두송이 꽃',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짐짝' 군! 독특한 등장 인물 설정도 고정 관념을 즐겁게 파괴한다. 이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의 에피소드들은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그와 함께 웃음도 쉴새없이 터져 나온다. 이런 난리 법석 속에서도 초연하게 관광객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는 '두송이 꽃' 에게는 감탄마저 나온다. 사실, 이 책은 '두송이 꽃' 과 같은 자세로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성가시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즐기면 된다.
무거운 분위기의 판타지들이 많이 나온다. '삶이란 무엇인가' '존재의 성찰' '선악의 근원적 대립' 과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달고 나오는 소설들도 많다. 물론 그런 책들을 심각하게 읽고 심각하게 고민하며 그에 대한 감상을 더욱 심각하게 적는 것도 유익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신나게 달리는 느낌의 판타지를 읽는 것도 좋다. 골치아픈 생각은 다 날리고 폭소를 통해 머리속을 시원하게 씻어 내는 것이다. 어떤가, '두송이 꽃' 과 함께 디스크 월드의 세상으로 떠나가 보는 것이?
경고 : 단, '영국풍 유머' 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쉴새없이 웃음이 터져나오지 않을 수도 있음.
안심하시길, 그래도 이 책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