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등장 인물들과 함께 두뇌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가 첫 번째, 등장인물간의 미묘한 심리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가 두 번째, 그리고 추리소설이 씌여진 시대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며 '이 시대는 이렇구나' 라는 걸 생생하게 느끼며 얻는 재미가 세 번째다. 추리소설만큼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그 어두운 일면까지 생동감 있게 비춰주는 장르 문학은 없다. 옛날에는 첫 번째 이유로 추리소설을 읽었지만, 요즘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 때문에 추리소설을 읽는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 은 내가 앞서 이야기한 추리소설의 세 가지 재미에 하나도 빠짐없이 충실한 작품이다. 우발적인 살인을 덮기 위해 완전 범죄를 계획하는 여인들과, 그녀들을 추적하는 형사와 또 다른 등장인물이 벌이는 머리 싸움은 첫 번째에, 함께 범죄에 연루된 여인들이 각자가 지닌 고민과 이유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모습은 두 번째에, 그리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가려진 일본 사회의 어둡고 음습한 측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낸 점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 거기에 파랗게 날이 선 일본도처럼, 간결하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한 문체와 탄탄한 구성까지 덧붙여졌으니, 정말 잘 된 소설이라는 찬사를 쏟아놓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쾌감에 시달렸다.
살해 장면과 시체 처리 장면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원인은 아니다. (사실, 이것보다 더욱 잔혹한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으므로, 웬만큼 잔인한 것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내가 추리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종의 '환상' 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네 사람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 말 그대로 'OUT'된 여인들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이 더더욱 'OUT' 된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원하는 바를 얻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 가엾은 그녀들이 자신이 원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얻길 바랬던 내 소망은 깔끔하게 무너졌다. 기리노 나쓰오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그녀들을 부숴 버렸다. 주인공에게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서일까. 읽다 보니 나중에는 마치 내가 그렇게 부서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책에 대한 소유욕이 너무 커서, 일단 책을 사면 결코 내 곁에서 떠나보내지 않는 사람인데, 'OTU'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는 '너무 불쾌해, 이 책을 팔아 버려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꽤 충격이 컸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맘에 안 들어했던 이런 결말이 더 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이 소설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소재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추리소설에서 일종의 권선징악적 환상을 쫓는 --- 사실 이 소설도 권선징악적이긴 하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과, 그 사람을 도운 사람들의 말로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니까 --- 나는, 그 섬뜩할 정도의 현실성에 거부감을 느꼈다. 소설은 어느 정도는 소설다워야 한다는 조금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루스 렌델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지나친 현실감 때문인데, 기리노 나쓰오에게서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우 잘 쓰여진 소설이고, 한 시도 쉴 틈 없이 빠르게 읽히며, 읽고 난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 소설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선택은 - 이 리뷰를 보는 여러분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