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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몽상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도록 하죠.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은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추리소설입니다. 1권에서는 연쇄살인사건과 경찰의 범인 추적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2권에서는 범인들이 드러나며 그들이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를 자세히 보여주죠. 3권에서는 진짜 범인이 사람들을 농락하다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1500페이지 분량의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소설인데도 단숨에 읽히는 것은 소설이 이렇게 독특한 구성을 통해 한시도 독자들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소설의 방대한 분량은 --- 잡지에 6년간에 걸쳐 연재된 소설이었기 때문에 분량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던 듯 --- 끔찍한 사건 자체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유족들, 가해자의 가족들, 경찰들, 사건에 관해 쓰는 저널리스트처럼 이 사건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절망을, 분노를, 공포를, 죄책감을 생생하게 다룰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연쇄 살인사건을 일종의 흥미거리나 오락처럼 생각하는 대중들, 그들을 이용하려는 언론의 비인간적인 면모도 함께 묘사했죠. 이 소설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이겁니다. 다루기 미묘하기 때문에 다른 추리소설에서 잘 조명되지 않았던 부분 ---- 피해자의 가족들은, 가해자의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 을 그려냈다는 걸요.

그러나, 너무 길긴 깁니다. 등장 인물들 간의 관계가 사건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등장 인물 또한 너무 많습니다. 반드시 들어갈 필요가 없는 지엽적인 에피소드도 많고, 가끔은 '대체 이 작가가 뭘 말하려고 하는 건가?' 라며 물음표를 띄울 때도 있었습니다. 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결여된 듯한 느낌을 받았죠. 특히 마지막 부분, 개인적으로 '상투성의 극치를 달린다' 라고 생각한 결말 부분에서는 약간 실망까지 했어요. 짧고 강렬한,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만한 충격적인 반전을 그려내기에 이 소설은 너무 길었습니다. 한 회 분량씩 나오는 잡지 소설이었다면 3권 즈음에 가서 늘어지는 듯한 흐름, 지나치게 자세하다 싶은 묘사, 시공을 넘나드는 회상씬들이 오히려 독자들을 붙잡아 두는 장점으로 작용했겠지만, 단행본으로 단숨에 읽기엔 좀 껄끄럽더군요. 잘라낼 수 있는 곳은 과감히 잘라내는 편집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잘 쓰여진 소설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흐름이 늘어진다, 쓸데없는 장면이 많다고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도 떼지 않은 채 정확히 7시간 동안 사람을 지면에 붙들어 둘 만한 소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모방범은 능히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소설입니다. 일종의 '롤러코스터'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좀 더 길이가 짧은 롤러코스터였다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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