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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길에 선 책꽂이

이 책의 장르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 지 잠시 난감했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 역사쪽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개인의 자서전으로 볼 수도 있고, 매체를 생각하면 만화쪽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나는 개인의 일대기라는 쪽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했다.

소문을 익히 듣고 구입했는데, 첫장 넘겨보고 숨이 턱 막혔다.  소프트하고 샤방샤방한 그림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까만 테두리에 까만 그림, 까만 글씨, 도통 음영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온통 까만 책 속 내용이 읽기도 전에 벌써 숨쉴 공간을 주지 않는 답답함으로 다가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긴장감이 바싹 엄습했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던, 그리고 살아남은 부모를 둔 유태인 작가다.  여러 실험적인 작법을 통해 신선하고도 독특한 만화작법을 연출해 낸 그는 아버지를 인터뷰하여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1권에 8년, 2권까지 모두 13년에 걸친 작업이었고,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단순히 이 책이 히틀러에 의해 학살된 억울하고도 불쌍한 유태인 이야기라고만 짐작하면 책의 절반만 읽은 셈이 될 것이다.  유태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 당했는 지는 모두 안다.  하지만, 그랬다!라는 결과만 알 뿐이다.  이 책에는 그들의 처절한 생존 싸움이 무서울 만큼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 당장에 누가 죽을 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와중에선 믿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도 내가 살기 위해선 뻔히 죽을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등 떠밀어 내보낸다.  죄책감조차 사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살아남는 자는 착한 자도 아니고 명예로운 자도 아니다.  능력있는 자!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단이 있는 자!  작 중 작가의 아버지인 블라덱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구사할 수 있는 언어와, 손에 익히 재주와, 긴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예민한 본능을 가지고 지옥같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는다.  그의 처세술은 로빈슨 표류기의 로빈슨도 못 쫓아올 수준이다.;;;;;

전쟁은 끝났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의 아내도 살아남았다.  새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작가는 대학에 가서야 모든 아이들이 악몽에 시달리는 부모의 괴성에 한밤에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놀랍게 체득한다.  굶주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버지는 절약이 습관화된 정도가 아니라 신성시할 정도다.  그런 악착스러운 모습들은 아들과의 사이를 자꾸 벌어지게 만든다.  아버지의 가치관으로,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들의 생활습관이나 직업 등은 모두 한숨 나오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애쓰지만 이내 지쳐버린다.  병든 아버지를 자기 집에 모셔 와 살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자살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아버지도 똑같은 무게로 그를 억누르고 있다.

작가가 보여준 극단적 비극의 한 단면은 인종차별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그 아버지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도둑 취급하며 어찌 상대할 수 있느냐고 펄펄 뛰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은 아버지가 정말 싫어진다.

작품은 이야기 말고도 여러 독특한 점을 지닌다.  작품 속에서 유태인은 쥐로 묘사되고 독일인은 고양이로 그려진다.  폴란드인은 돼지로 묘사되고 미국인은 개로 나왔으며, 프랑스인은 개구리로 그려졌다.

그가 1권의 성공 이후 사회적 부와 명성을 얻으면서 더 고독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더 힘들어하는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그의 책상 밑으로 셀수도 없이 많은 쥐들이 갈비뼈를 허옇게 드러낸 채 죽어 쌓여 있는 모습이 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일지라도,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끔찍했던 기억은 유산처럼 그가 짊어지고 갈 몫이 되어버렸다.  피할 수도 없고 벗어날 방법도 없는 채로.

아버지가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며, 그를 이미 죽은 형의 이름으로 부른 장면도 책장을 바로 넘기지 못하고 멈추게 하는 힘을 지녔다.  형은 가스실로 보낼 수 없다며 숙모가 독약을 먹이는 바람에 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비난받을 짓을 했고, 비난 받고 있지만 아마도 끄떡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무섭게, 독하게 만들었을까.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수천년에 걸친 유랑 생활이?  그 모든 이유들을 도합해서 오늘의 그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싸울 뿐이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들은 불과 60년 전의 일을 잊은 것일까.  가해자이면서 뉘우치지 못하는 일본도 욕먹어 싸지만, 피해자였으면서 다시금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대체 어떤 양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읽어 마땅한 책인데,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가슴 속이 더 무거워지는 답답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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