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聖畵라고 부르는 ICON은 매우 특이하게 그려진다. 이 그림에는 현대 미술에서 중시하는 원근법과 같은 기본적인 미술의 기초를 깡그리 무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콘을 보면 그림이라기 보다는 신앙에 관하여 그린 사람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콘을 볼 때면 의미보다는 신앙을 보려고 노력한다. 이런 의미를 찾는 것을 본다면 이콘은 현대적인 추상화와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콘에서는 매우 특이한 점이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주제가 아니라 등장 인물의 중요도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은자 시메온을 그린 그림이나 은수자 안토니오를 그린 이콘을 보더라도 제목상으로는 분명히 성 시메온과 성 안토니오가 주인공이지만 그림으로 볼 때 그들은 주인공의 위치에서 벗어나 조연의 위치에 머물기 때문이다. 언제나 중심에는 신과 그리스도와 마리아와 같은 신앙의 핵심들이 자리잡고 있다. 즉 이콘은 우리에게 주제의 의미를 전달하는 보통의 그림이 아닌 것이다. 이콘은 절대적인 신앙의 견고함과 불변함 그리고 신비함을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다 신의 신앙을 전하는 도구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콘의 이런 특성을 통해 고대로부터 중세로 이어져 오는 중세 유럽의 개인관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렇게 유추해낸 중세의 개인관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이콘의 상징적 그림의 세계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론 구레비치는 이런 일반적인 고정관념에 회의를 표시한다. 과연 중세의 인간들은 종교적인 엄격주의에 함몰되어 있었을까? 아론 구레비치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아니다라는 대답에 대한 긴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저자의 학설은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기존의 중세적 인간관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것이다. 저자인 아론 구레비치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중세의 질서를 만든 그리스도교 이전에 유럽에 존재했던 원래 유럽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가 제일 늦게 전파된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사가에 주목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그리스도교화는 서유럽에 비해 100년에서 400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유럽이 800년경에 샤를마뉴에 의해 그리스도교화가 완성된 반면 스칸디나비아는 900년부터 12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그리스도교화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북유럽의 사가는 고대의 신화적 영웅전에서 보여지는 공동체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개인의 묘사 또한 분명히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신화적 영웅의 틀에 고정된 인간은 개인보다는 공동체적인 운명에 얽매어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적인 개인의 모습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조금씩 변모하게 된다. 신앙의 특성상 개인적 요소가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즉 신앙은 공동체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리스도교화 과정에서 사람들은 개인적인 성찰을 통해 신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였다. 중세 시대의 수많은 성인들은 개인적 성찰을 통해 신과 정신적 교감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들은 완벽한 개인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개인으로 머물러 있었다. 즉 그들은 개인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인간이었다. 반면 중세 후기에 아벨라르의 경우 공동체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적인 것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중세인이지만 근대적인 개인관을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중세에 이렇게 공동체적이면서 개인적인 성찰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적인 특성 때문이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공동체적인 집단의 구원이 아니라 개인의 구원을 택하였다는 점이다. 이 결과 죄의 구원에 있어서 개인의 참회와 회개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였다. 이것은 공동체의 벌을 공동체가 책임진다는 고대적인 연대책임에서 개인의 책임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을 통해서 아론 구레비치는 중세시대에 이미 개인주의의 싹이 발아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탐색 과정은 기사와 상인 계급을 다루면서 절정에 달한다. 기사계급과 상인계급의 가치관을 비교 분석하는 가운데 기사로 대표되는 중세성이 상인으로 대표되는 근대성에게 어떻게 밀려가는가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현재 유럽인들의 개인성으로 인식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된다(이 과정을 좀더 자세하게 알아보려면 수량화 혁명을 참조할 것). 아론 구레비치는 이런 과정의 탐색을 공동체와 개인의 내면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의 이런 연구를 따라가다보면 중세는 개인이 아닌 신앙의 시대였고, 개인성은 르네상스기를 통해 분출되었다는 선입견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선적인 과정을 따라 진행되지만 인간의 내면, 심리적인 측면은 선적인 역사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론 구레비치의 이런 결론은 좀더 실질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로서 아론 구레비치는 또 하나의 중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