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곁길에 선 책꽂이

광고나 서평을 보고 눈에 뜨이거나, 이야기 도중에 언급되는 책 중에서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가끔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선택한, 내게 새로운 분야의 책이다.

'약도 같은 책'을 읽어보자하는 마음으로 서점 장바구니에다 사회과학으로 분류된 책 몇 권을 주워담고, 그 중에서 만만한 하나를 골랐다. ‘운동’을 하지 않았고, 정치 위주의 흐름에 관심이 없는 나도,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은 마음은 생기나보다.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었고, 저자가 한국과 일본의 두 페미니스트라는 점이 내 목적과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의심도 있었다. 그래도 다른 책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잡아들었다.

책은, 현실을 “통합의 시대'가 아니라 흩어지는 분열의 세대” “통일과 분절화가 동시에 진행”되어 “성찰적 기획을 제대로 해내고 성사시키기에는 너무나 돌진적인 속도로 변하는 세태”로 이해하는 한국학자 조한혜정과 관심사가 페미니즘에서 지자체, 시민권, 고령자 복지 문제 등으로 이동하고 있는 일본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서로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공감하고 차이를 이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폭넓고 다양한 분야를 두 사람이 편지 글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관심 없던 분야도 어느 정도 끄덕끄덕 하고 이해하게 된다.

48년생 여자이면서도 “네 자신이 되라. 사회에 굴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사는 여자가 되라”라고 말해주는 어머니를 가진 조한혜정은 지내온 시대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분명 부러운 사람이다. 큰 흐름을 바꾸는 ‘운동’의 시기에 그녀가 택한 '여성운동'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활동들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비판과 긍정의 차이점은 더 어려운 이야기라 내겐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조한혜정은 학문의 여러 부분이 서구 중심인 사회에서 자신을 '주변부 지식인'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새로운 중심'이 아니라 '다중심적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그 답은 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답이 아니라 흐름이기까지 하다. 인터넷에서 나를 압도해오는 정보들을 보면 그 생산자들이 어떤 새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개가 각자 중심에 서있는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약자가 계속 살아가기 위한 사회를 설계하는" 우에노 치즈코를 긍정하면서 "부단히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becomming)에만 가치를 두었던 사회에서 존재 자체를 중시하겠다(being)는 사회로의 방향 선회"라고 말하는 조한혜정의 진단이 가능성이 어찌되었건 마음에 든다.

국가가 다른 두 사람이 각자 네 통의 편지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큰 매력을 못 느끼겠지만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세상 변화를 관심 가지고 지켜보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기만 하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도 제목이 말하는 ‘경계’에 신경이 미치지 않았는데 정리하는 지금 ‘우리는 언제나 걸어온 곳과 걸어갈 곳의 경계에 있다’는 두루뭉술한 답이 나와버렸다. 물론, 작가가 말한 경계와 다를 것이다.

그녀의 다른 책 ‘글 읽기와 삶 읽기’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요새는 어찌 유행이 한참 지난 책들만 읽게 되네...' 했는데, 정답을 알아보니 내가 꽤나 책을 안 읽고 살았다이다. 적더라도 꼭꼭 씹어먹는 책읽기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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