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물성에 담긴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다.
이 책은 서문이 다른 책에 비해 상당히 길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독서 운동’이라는 독서 홍보 운동에 대한 반문은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달라 참신하고 더욱 관심이 갔다. 내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에 반감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와 비슷했다. 책을 읽고 그 느낀 점을 명확히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어디 가서 책을 정확히 통독했다고 말 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닐까. (표현방법에 대해 정확 어휘가 생각나지 않아 표현을 못하는 황당한 순간을 제외하고,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책에 대한 책 ‘메타 북’
이 책에서 설명하던 메타 북의 정의는 ‘책의 내용이 담기는 그릇으로서 언어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었다. 거시적인 역사를 다루던 책도 있었고, 미시적인 주제를 다루던 메타 북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상당히 좋아했었다. 내가 읽지 못한 책까지 정보를 습득하는 기분이었고, 책을 조금만 읽어도 많은 권수를 흡수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책들 간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역할도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에 메타 북을 읽는 것이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좋은 걸 수도. 그러나 나는 메타 북을 통해 다른 책들의 지식을 얕게 알고 지나가려는 내 안의 나쁜 버릇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메타 북을 읽기보다 메타 북에서 주제로 담기는 책들을 직접 소화해가며 그 책들이 가진 지식의 ‘정신’에 대해 온전히 내 걸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고 고전과 책을 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한 방법을 체득할 수 있던 점이 나에게 있어서 매우 유익하게 남을 것 같다.
다시 보이는 고전, 비판적으로 검증해가며 읽자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파트는 네 번째 이야기,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였다. 양육에 있어, 본성을 확인하는 데 있어 ‘책’의 힘을 빌어 많은 도움을 얻는다는 사실을 얼핏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힘’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이들이 정말 너무나 정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이에 따른,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관점이 이끄는 독서 형태가 다르다는 사실도 나에겐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제일 신기했던 책을 통한 것은 ‘쌍둥이’ 연구였다. 이렇듯 수많은 세대와 시간을 거치면서도 약간의 형태 변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식의 전달 역할을 맡고 있는 책은 그 스스로 가진 가치와 정신에 대해 박수와 존경을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다른 책들에 숨겨져 있는 궁금증을 열심히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