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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무덤
  • 투명사회
  • 한병철
  • 10,800원 (10%600)
  • 2014-03-11
  • : 8,047

첫 장을 시작하기 전에 제목을 통해 내용을 미리 짐작해 보았다. 나의 상식으로 제목 '투명사회'에 대한 섣부른 짐작과 기대는 '바람직한'이란 사전적 의미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몇 장을 읽으면서 이내 '작가의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새롭게 정의된 의미들을 곱씹어 가며 읽어야했기 때문에 꽤나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먼저 나와 같은 사람들 즉, '투명'을 긍정, 바람직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일깨운다. 간단하게 '투명'은 결코 '옳음'이 아니라고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즉, 형체를 가지고 있든,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든, 이 모든 것들이 투명해진다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여기고 실제로 믿게 된다. 그리고 바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이 공개되어 투명해지길 바라고, 공개된 것들을 공유하는데 있어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길 원하며, 가능한한 선두에 서고 싶은 욕망과 경쟁심이 생기는 지경에 이른다.

문제는 사람들의 정의감과 경쟁심, 그리고 기술의 발달일지도 모르겠다. 앞서겠다는 욕망과 정의롭든 혹은 그 반대든 '알리고자'하는 그리고 '알고싶은' 각각의 마음들이 발달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만나 수많은 정보를 생산한다. 하지만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생산되었고, 결국 '정보'는 사람들에게 선택되기 위해 강한 이미지로 무장하게 되었으며,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 역시 '정보'의 의미보다는 '외양'을 중시하게 되었다. 투명해지길 바랬던 기대들이 모여 '전시'에 이르게 한 것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에서 정보의 공급자와 수요자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각 분야의 '대표'가 무색해질 만큼 누구나 '대표'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정보들을 공개할 의지를 보이고, 때로는 의지와 상관없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게 우리는 파놉티콘의 구성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파놉티콘에서는 수감자와 감시자의 나눔조차도 없다. 모든 구성원들이 이 두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가린 것 없이 모두 보이는 '투명'에 대한 인식때문에 신뢰가 쌓일 수 있다는 오해는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가려진 것에 대한 미학'을 생각하게 된다. 숨김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전환의 필요와 작가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부정성' 즉 '다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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