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죽음이란 언제나 낯설다. 지근거리에서 한 인생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목사라할지라도 죽음은 마음을 흔든다. 삶의 성찰이라는 진지한 물음을 선사함에도 죽음은 편치 않고 서걱대며 여전히 유예하고 싶은 어떤 것이다.
그런 죽음이 느닷없이 찾아오게 될 때의 당혹스러움은 어쩌면 목사이기에 더할 수 있다. 병상에 누워 힘겨운 싸움을 하는 교우를 위로하고 격려하던 사람에서, 하루아침에 위로 받으며 도움을 구하는 사람으로 자리바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곤혹스러움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해 왔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사라진 것 같은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질 때이다. 다른 건 몰라도 건강만큼은 지켜주실 거라 믿었던 마음이 흔들리는 때, 그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2020년 12월의 어느 날, 저자 황해남 목사는 한 해가 가기 전 건강 검진이나 받아 보자며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던 검진에서 위암 4기를 선고 받는다. 담당의는 잔여 수명이 불과 6개월이라 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투병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암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어서 몸의 상태에 따라 감정이 위 아래를 오갔다. 때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며 죄스럽게 말하는 자신에게 '사랑한다면 죽지 말고 살라'는 아내의 말이 화인처럼 가슴에 남았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에게 암은 제동을 걸었다. 매사에 거침 없고 한번 마음 먹은 것은 이뤄내고야 마는 그에게 암은 일상의 단절과 함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다.
두 아들을 사랑한다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목회를 우선했던 것이 떠올랐고, 아내의 소중함은 날이 갈수록 사무쳤으며,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됐다.
자신이 내린 커피를 자신을 쏟아부은 카페이자 교회인 그리심에서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숨 쉴 수 있는 건강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그는 온 몸으로 배우게 된다.
마음이 가난할 때 인간은 빛난다. 자랑거리가 부질없는 것임을 자각하며 자신의 민낯을 직면하게 될 때 그렇다. 회한으로 가슴은 찢기지만 존재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지는 역설 속에서 황해남은 더 깊이 자신을 만나고 은혜 안에 잠긴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고 주치의는 예상했지만 그는 현재 1년 3개월을 더 살고 있다. 자신이 무력하고 무능한 자임을 자인하면서 하나님께 더 깊숙히 안기고 새로워지며 풍요 속에 거하고 있다.
그에게 이제 암은 넘어야 할 산이 아니다. 삶도 죽음도 하나님께로 가는 여정임을 체감하면서 그는 누린 은혜를 지체들과 나누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오래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설사 그렇지 못한다할지라도 그 또한 은혜임을 안다. 그래서 황해남은 오늘도 사랑이라는 떨림을 안고 하루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