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아닌 살아내야 하는 날이 있다.
매 순간이 힘에 겨워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날 말이다.
숨쉬는 것조차 고역이라 느껴져 자신마저 돌볼 수 없는 그런, 그런 날 말이다.
그와 같은 날들을 견디고 견뎌 마침내 평안을 찾은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일곤이 그러하다.
김일곤은 목회자로 일찌감치 결혼해 아내와 35 년을 함께 했다.
그에게 아내는 동역자이자 좋은 친구였다.
이런 아내에게 4년 전 악성 뇌종양이 찾아 왔다.
뇌종양은 뇌출혈로 이어졌고 편마비를 불렀다.
그는 목회를 친구 목사에게 맡기다시피하고 2 년여 동안 아내 곁을 지켰다.
아내는 손재간이 뛰어났다.
무언가를 만들어 선물하길 좋아했고 자그마한 가게를 열길 원했다.
아내의 바람을 들어주려 계약까지 마쳤는데 그 무렵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이제 오순도순 살아 보려던 참이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그와 두 딸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럼에도 병은 악화되었고 더이상의 치료가 의미를 잃게 되자 그는 추억 여행을 위해 가족을 차에 태우고 자연을 찾았다.
그러던 작년 4월 부활 주일에 아내는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날마다 새벽일기』는 아내를 떠나보낸 후 살기 위해 쓴 그의 생존 분투기이자 고백록이며 수상록이다.
마음으로 읽고 가슴으로 공명해야 하는 책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투병 중 아픔을 호소하던 당신 생각날 땐
난 숨이 멎는 것 같습니다.
내 곁을 떠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 흘립니다.
연약한 몸 이끌고
살고자 걷고자 하루하루 애쓰며 힘겹게 생활하던
당신의 뒷모습 비추일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살도록 걷도록 도와주지 못한 나의 무능함에 고개를 떨굽니다.
내 옆에 당신 부재한 현실에 눈뜰 땐
홀로 남은 외로움 그리움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사별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은 알지요.
하늘은 내게
남은 자는 떠난 자의 몫까지 다하고
쓰라린 상처 안고 사랑의 통로되라 토닥입니다.
내게 주어진 생명 있는 날 동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53 쪽)
목회자로 살며 다른 이들을 돌보느라 아내는 늘 뒷전이었다.
사무치는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한동안 그는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두 딸도 아빠를 걱정할 정도였다.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김일곤은 자신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글 모음이 바로 이 책이다.
그의 마음은 짙은 시와 아픈 글로, 때론 생명의 경외를 속삭이거나 외치는 찬연한 삶의 찬가로 빚어져
공감을 부르는 노래와 사진에 담겨 읽은 이의 마음을 두드렸다.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걷기라 했던가.
아내가 떠난 후 그는 두 발로 곳곳을 다니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더 깊이 하나님 곁으로 다가갔다.
숲 사이를 소요하며 사유하고 그 속에서 새롭게 만난 생명과 소중한 이웃들로 인해 큰 위로를 받고 마음의 평강도 되찾았다.
걷기와 쓰기는 그에게 치유와 해방을 안겨주었다.
자신에게 깊이 들어가면서 자신의 상처를 깨닫고 보듬게 되었으며, 다른 이를 더 세심히 배려하게 되었다.
버릴수록 채워지는 경이를 한층 실감하게 되었고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길을 선명히 보게 되었다.
아내의 부재는 여전히 슬프고 또한 자신이 원했던 생의 그림도 아니었지만,
절대자이신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기에 그는 이제 벅차도록 빛나는 생명의 아름다움마저 누리고 있다.
천 근도 더 되는 시간의 무게를 감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혼자였다 둘이 되었고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이제 그의 곁에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힘이 되었던
소중한 두 딸과 사위, 사랑스런 손자가 있다.
더하여 친구라는 이름의 새로운 연대와 인생의 3막을 열 뚜렷한 소망도 생겼다.
그 길을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잘 걸어가길 바란다.
내겐 이 책이 마치 인생 3막을 여는 시작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