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치매로 인한 사고로 병원의 중환자실에 계시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집에 오신 후 눈을 감으셨다. 새해 첫날이었다. 할머니의 치매가 수면 위로 부상한 날을 기억한다. 변비로 고생을 많이 한 다음날, 할머니는 엄마에게 “형님, 안녕히 주무셨는교” 하고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인사를 하셨다.
할머니는 아들 다섯에 딸 하나를 두셨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생활을 책임지셔야 했다. 살아계셨다면 116세가 되셨을 할머니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곳을 포함 위로 아들 셋은 공대를, 밑의 셋은 고등학교까지 보내셨다. 만약 세 분이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면 할머니는 두말 않고 대학까지 보내셨을 거다.
할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다. 일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돈인 우리 이모도, 외삼촌들도 할머니를 좋아했다. 이북에서 홀로 내려왔다는 이모부는 할머니를 보러 김포에서 동교동까지 찾아오곤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치매가 온 데는 남에게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성정과 넷째 다섯째 삼촌 때문에 속을 많이 끓인 것이 주된 요인이 되었지 싶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을 때 우리 친가는 형제들끼리 함께 한 회사의 부도로 집안 전체가 주저앉은 상황이었다.
그런 정황에도 넷째 삼촌이 와서 들볶으면 할머니는 돈을 구하러 간다며 집 앞의 큰 도로를 마구 건너가곤 하셨다. 할머니의 패물은 언제 가져갔는지 남은 게 없었고 그 후 할머니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셨다. 사고라도 날까 걱정이 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운 집은 다 좋은데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좀 가팔랐다. 늘 조심한다 했지만 결국 그 계단에서 할머니가 굴러 머리를 두 번이나 다치셨다. 첫 번째는 금세 나으셨다. 그러나 두 번째는 전과 달랐고 할머니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의 중환자실에 반 년을 넘게 누워 계셨다.
중환자실에 계신 할머니의 면회는 하루에 세 번 허용되었다. 새벽과 점심과 저녁 5시인가 6시. 평일 그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동생들도 학교를 다녔고 그 무렵은 엄마도 직장을 다니셨다. 할머니를 뵈러 면목동 집에서 휘경동까지 걸어 갔는데 할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먼 줄도 모르고 걸었다.
어느 날 “할머니 저 왔어요” 하고 인사를 드리고 손을 잡았는데 할머니가 내 손을 꽉 잡으셨다. 너무 좋았다. 그 때문에 그 길을 걸어서 오갈 수 있었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우리 할머니의 말년이 이토록 비참하다는 사실이 무척 슬펐다. 이 년 전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시댁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 고모마저 그때는 서울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안 됐다. 고모라도 계셨으면 할머니에게 얼마나 좋았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 꿈을 자주 꾸었다. 할머니에게 잘해 드리지 못한 점들만 새록새록 떠올랐고 집안이 어려울 때 돌아가셔서 한없이 가슴이 아팠고 그리웠다. 내게 치매는 한 인간이 겪는 어쩔 수 없는 노화의 과정이 아니라 할머니와의 이별을 앞당긴 도화선이었고 슬프고 아픈 시기를 부른 고통스러운 질병이었다.
한 인간의 존엄을 서서히 앗아간 치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치매는 내가 만났던 치매와는 다르게 무겁지 않았고 공포스럽지 않아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치매 전문의였던 의사가 치매 환자가 되어 몸소 겪으며 쓴 글이라 믿을 수 있었고 위로와 안심이 되었다. 요즘 치매는 암보다도 더 두려운 느낌을 준다. 기억이 사라져 종국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다는 사실은 얼마나 비감한 일인가. 치매 환자를 돌보다 지친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도 종종 보게 될 만큼 이제 치매는 고령화 시대의 팬데믹이 되었다. 이 책은 치매 전문의로 50여 년을 살았던 저자가 88세 때 치매에 걸린 후 자신의 일상을 사명감을 갖고 전하는 책이다. 저자 하세가와 가즈오는 세계 최초로 표준치매진단검사를 만들었고, 인간 중심의 케어를 일본 의료계 전반에 보급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치매의 가장 큰 위험 인자를 노화라 하며 100세 시대를 맞은 현대에는 누구나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가 책을 낸 이유는 이제 치매가 누구나 마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단다.
" '이렇게 하세요' 하고 혼자 이야기를 주도하며 뭐든지 결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황한 치매 당사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무얼 하고 싶으세요?” 하는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오늘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가요?” 하는 질문도 해 주세요. 그러고 나서 상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귀담아들어 주면 됩니다.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을 내어 주는 일입니다." 「돌본다는 건 내 시간을 주는 일입니다」 중에서
저자는 치매 가족을 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려준다. 또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교정해 주기도 한다. 치매에 걸리면 같은 증상이 매일 계속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단다. 덧붙여 한번 걸리면 끝이라든가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특별 취급도 하지 말라 한다. 게다가 치매 당사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장애의 정도를 줄일 수 있다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모르겠다.
남에게 생긴 일은 내게도 생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생긴 일이 함의하는 것은 대개는 불행한 일이니 무서운 말이다. 불행이 내게 닥치지 않기만을 바라거나 닥치치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안심만 할 게 아니다. 노화와 함께 비례하는 치매 발생률을 생각하며 조금씩 알아가고 준비하면 좋겠다. 이렇게 말해도 맞이할 엄두도 안나고 회피하고만 싶은 질병이지만 저자 하세가와 가즈오는 쉽고도 명확한 지침으로 우리를 다독인다.
“저는 어떤 병에 걸렸든 아픈 사람에게는 신체적인 케어만큼 정신적인 케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장 그 사람다운 모습,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지지하는 사고와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정신적인 케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저를 지지해 주세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