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읽기를 통해 우리가 만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읽는 것은 글이지만 반사되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자기 얼굴을 못 보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은 코미디이자 비극이다. 자신을 보려고 거울을 들거나 사진을 봐야 한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보기 위해 매개체가 필요하듯이 자신을 읽기 위해서도 그렇다. 세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책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을 보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니 자신이 보였을 뿐이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책이란 거울에 비친 나는 묘사가 적고 서사에 집중하는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못 견뎌하고 그래서인지 핍진성에 주목하며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소설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니 세상이 더 요지경 인데 굳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며 그 답도 같이 찾고 싶었다.
이 책은 소설가 다섯 명의 글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작가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모두 문학상 수상자이고 가슴 한 가운데에 소설을 보물처럼 간직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그리는 세계는 살아온 삶만큼 다르고 보는 시각만큼 다채롭다.
흥미있게 읽은 소설은 문서정의 「손가락은 손가락을 모르고」이다. 그녀 소설의 특징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소설이 이야기라면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녀는 매끄럽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며 촘밀하게 직조해갔다.
내세울 것 없는 부모의 자식들이 있다. 그들은 아버지의 도덕적인 결함와 육손이었던 엄마의 신체적인 결함을 감추고 싶어했다. 막내아들은 밖에서 낳아왔고 큰아들은 가족과 절연하다시피하며 산다.
데려온 아들로 인해 큰아들은 엄마와 멀어지고 딸들은 생선 장사로 비린내가 밴 엄마를 부끄러워한다. 엄마가 세상을 뜬 후 자식들은 언젠가부터 엄지 옆 쪽에 손가락이 자라는 것을 깨닫고 다같이 모인다.
그 날 화자와 바로 위의 언니는 막내가 데려온 아이임을 알게 되고 결혼도 안 하고 홀로 사는 큰언니의 비밀까지 알게 된다. 그토록 이기적인 오빠가 한때 자신들의 등록금을 댔다는 것마저 포함해. 돌아가신 엄마의 생일날인지도 모르고 만난 그들이 깨닫게 된 것은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모르는지를 안다는 사실은 아픔보다 중요하다. 씁쓸하고 허망한 감정을 안기지만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만 모르는 게 아니다. 자신도 모른다. 큰언니가 엄마의 전세금과 1/5로 나눈 부의금을 막내에게 줄 때 화자와 바로 위 언니는 입 밖으로 혹은 마음 속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런 현실을 이 소설은 선명하게 비춘다.
그밖의 4편의 소설도 각기 다른 이야기로 삶을 그린다. 강이라의 「수국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는 청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분위기다. 봄 날 흩날리는 꽃비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되는 것처럼, 이 소설의 인물들은 그들의 정서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김강의 「으르렁을 찾아서」는 원컨 원치 않건 간에 우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종기라는 아픔을 통해 내 몸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는 것처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그 사람이 우리를 살리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재고케 한다.
김도일의 「관목貫目」은 내게 처음으로 멋진 문장으로 이뤄진 장(章)이 전개에 있어 필요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 소설이다. 번득이는 칼 같고 갓 바다 위로 끌어올려진 생선처럼 퍼득이는 문장들로 이뤄진 시적인 글이었지만, 도입부에 있어 이 부분이 있어야 할 장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진 완결성이나 주제의 묵직함, 베트남 전쟁이라는 특수성을 보편성의 자리까지 이끈 서사의 힘은 주목하고도 남을만한 의의를 가진다.
전은의 「크리미는 크리미해」는 가독성이 좋은 반면 전언은 예사롭지 않다. 이혼을 한 엄마가 딸에게 갖는 집착과 폭력, 자신의 바람을 딸에게 투사한 후 또다른 실패가 두려워 삶을 놓아버린 엄마의 이야기는 곤혹스러웠다. 딸의 장래를 위해 숨겨놓은 전자화폐는 딸이 믿은 같은 처지의 아르바이트생에게 털리게되고, 딸은 만져본 적도 없었으니 가진 적도 없다며 허탈해한다. 엄마로서만 읽고 싶었던 책이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소설을 읽어야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 나와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소설은 나를 읽고 너를 읽는 행위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를 알아야하는데, 인간이 결코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나 이외의 것들로 채워졌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렇다. 심지어 내 몸조차도 부모에 의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