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끈질긴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p.52)
그녀는 유족 동의 없이 부검당하는 사람이나 죽은 수백명의 아이들의 악몽을 꾸는 사람이다. 세상의 약한 존재들에게 공명할 수 있는건 그녀 자신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댓살 자기 아이도 알아보는 그녀의 약함을 세상 다른 사람들이 몰라볼까. 불신과 질투, 경쟁과 용렬함과 환멸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녀는 언제고 대체가능한 사물처럼 존재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p.46)
그랬던 그녀가 눈사람이 되었다. 통증도, 고통도 없어서 두려움이 없는 상태. 어쩌면 그녀는 비로소 사물로 완성(ㅠㅠ)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힘에도 부스러지고 냉동실 속에서도 기화되어버리는 약한 눈사람인지라 여전히 약하기만 하다.
심장이 있던 자리까지 모두 꽁꽁 얼려버린다면 조금이나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록 그녀는 점점 녹아내린다. 사랑의 마음과 기억이 그녀의 마지막을 재촉하는 셈인데, 그럼에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물이 아니라 지극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녹아내림을 알면서도 나누는 마지막 입맞춤은 그래서 더 슬프다.
아이와 눈사람을 만들어 냉동실에 넣는다거나, 자다가 깨어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본다거나 하는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실로 연결된 것 같아 문득문득 가슴 한켠이 팽팽하게 당겨졌던 기억도, 회사에서 언제고 대체가능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인듯 읽었다. 작별하는 그녀는 담담한데 나는 이렇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