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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신주의 감정수업
  • 강신주
  • 17,550원 (10%970)
  • 2013-11-15
  • : 24,110
“나를 밟고 넘어가라.” 스승이 제자에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그래야 제자가 훨훨 더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만약 아이가 힘들다고 어른이 몸을 굽히고 너무 많이 도와주면, 아이가 더 힘든 산을 만났을 때 좌절하고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죠, 위로 받으려고요. 그래서 박사님은 ‘힐링’이 단순한 미봉책이나 종교적인 맹신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계합니다. 그럼 ‘돌직구 철학자’가 「힐링캠프」에 나오면 어떤 얘기를 하실까요? 강 박사님은 ‘공대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진로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공대 경험은 남다른 ‘현실감각’을 주었다고 합니다. 상아탑에 갇혀 있는 철학자가 나오기 힘든 ‘거리’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힘도 바로 현실감각일 겁니다. 강 박사님은 대학 강단에서 ‘성공 지향’을 포기하라는 가르침은 힘겹게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버거운 요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진짜 “나의 얘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대학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강 박사님은 철학자를 의사에 비유하고, 내담자를 도화지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내담자가 철학자의 도움으로 문제의 본질을 깨닫고 거기에 반응하여 스스로 색을 칠해 나가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도화지에 그린 나의 모습이 예상치 못한 괴물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전혀 예상치 않았던 욕망을 내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한마디로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 혹은 나 자신을 믿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바로 당황이라는 감정의 정체다. 그러니까 당황의 감정은 라캉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했던 나와 실제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확인할 때 발생한다. 어쩌면 당황의 감정에 빠진 사람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당황의 감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 혹은 자기의 맨얼굴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가면의 욕망과 맨얼굴의 욕망이 우리 내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면, 당황의 감정에 사로잡힌 것이다.그러니 당황에 빠질 때 걱정할 건 없다. 무조건 맨얼굴의 욕망, 즉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경이롭게 생각하는 욕망이 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그런데 이렇게 진짜 나와 대면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사회화’를 통해 조직의 일원으로, 돈 벌어 오는 가장으로,그리고 부모의 자랑거리인 착한 딸로서 가면을 쓰고 살아갈 때가 많으니까요. “성인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가면은 하나의 보호색이기 때문에 약한 사람일수록 가면을 더욱 두껍게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여린 사람들은 맨얼굴의 욕망을 거부할 수도 있다. 키스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기 위해 후배나 선배에게 오히려 쌀쌀맞게 굴거나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남편과의 섹스를 꺼리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신 채로 그의 섹스에 응할 수도 있다. 아니면 춤을 추려는 욕망을 부정하기 위해 뒤풀이 장소에는 가급적 가지 않거나 친구들과의 늦은 만남을 피할 수도 있다. 뭐, 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에게 저항해 보라. 맨얼굴의 욕망을 부정하고 가면의 욕망을 추구하면 할수록, 낯빛은 피폐해지고 삶은 무기력해질 테니까.―『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안타깝게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가면도 저마다 모양새가 달라서 폭력적인 모습일 수도 있고 반대로 순한 양의 탈일 수도 있습니다. 「힐링캠프」에서 강 박사님은 이경규 씨의 욱하는 성격에 대하여 미리 화를 냄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는 가면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쿨한 척하지만 밤만 되면 소심하게 걱정에 휩싸여 잠 못 이룬다는 성유리 씨의 고민에 대해서는 연애를 하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합니다. 진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가면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면 나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만큼 타인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시간이 버겁지 않게 될 거라고. 그렇게 사랑은 가면을 벗기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애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진실한 우정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와 쿵짝이 잘 맞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딱 한 명이라도 있다면, 열 명 친구 부럽지 않습니다. 『감정수업』이 소개하는 작품들 중에서 인상 깊게 다가오는 우정 관계를 하나 소개합니다. ‘친구’에 대해 생각할 때는 항상 이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흑인 여성 작가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은 『술라』에서 남다른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흑인 여성 술라와 넬, 그들은 어린 시절 항상 단짝으로 붙어 다녔건만 넬이 결혼하자마자 술라는 훌쩍 도시로 떠나 버립니다. 그 소꿉친구 술라가 다시 돌아오자 넬의 마음은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찹니다.     마치 백내장을 제거한 후 시력을 되찾은 것과 같았다. 그녀의 옛 친구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술라가. 그녀를 웃게 하고, 그녀로 하여금 옛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들었고, 함께 있으면 그녀 자신이 영리하고 온유하고 약간은 천박하다고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여인, 과거를 속속들이 함께 살았고, 그녀와 함께하는 현재에는 끊임없이 느낌을 함께 나누어 갖게 해 주는 술라.술라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술라 앞에서는 자신이 결코 바보스럽지 않았는데,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또 있었던가? 그녀의 관점에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은 단순히 특이한 점, 즉 결함이라기보다 개성이 아니었던가? 그와 같은 재미와 공범 의식의 감미로움을 남겨 준 사람이 또 있었던가? 술라는 결코 경쟁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도와주었을 뿐이다. ―토니 모리슨, 『술라』에서 



바로 이런 친구 앞에서는 가면을 벗을 수 있습니다. 나의 단점을 사회적 잣대로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개성’으로 인정해 주는 친구, 나의 바보스러움을 정죄하지 않고 ‘솔직함’으로 받아들여 주는 친구, 혹은 나의 과거를 속속들이 얘기해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연인, 나의 천박함을 탓하지 않고 늘 내 편이 되어 주는 연인. 이런 사람이 내 곁에 딱 한 사람만 있다면, 그가 친구이든 애인이든 간에 나의 행복 지수는 치솟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겠지만 내가 먼저 가면을 벗는 위험한 연습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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