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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신주의 감정수업
  • 강신주
  • 17,550원 (10%970)
  • 2013-11-15
  • : 24,110

얼마 전에 강신주 박사님이 SBS 「Who Am I?」에 “자본주의에 맞서라”는 주제를 갖고 나와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진짜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가 성적 떨어지고 시험을 개판 쳤어도 심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적=의사=돈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아이가 개업하는 데는 관심 없고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해외 전쟁터를 돌아다닌다고 해도, 자식이 의대 가기를 바랄까요?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를 바라고 있는지, 아니면 엄마의 가치를 아이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한 인간에게는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노래를 잘할 수도 있고, 섬세할 수도 있고, 이야기를 잘 들어 줄 수도 있고, 부드럽게 잘 안아 줄 수도 있고, 여행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다양한 가치들도 모조리 돈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가 가진 폭력성이다.―『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강신주 선생님은 청소년기에 글을 잘 쓰는 문학소년이었지만, 당시 가난한 부모님은 장남을 돈 잘 버는 회사원으로 만들기 위해 공대에 입학시켰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나서 뒤늦게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 철학과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부모님으로부터 책 보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는 구박을 들으셔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철학자가 된 지금 강 선생님의 표정은 행복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 순간적인 것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삶이 다른 어떤 시간의 삶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년과 다른 올해 핀 벚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의 감수성과 죽기 전에 벚꽃 구경 한 번 해보자는 사람의 감수성은 같을 리 없습니다. 전자에게 내년에 피는 벚꽃은 올해에 피는 벚꽃과 또 다른 감동을 주겠지만, 후자에게는 어제나 오늘이나 벚꽃은 모두 똑같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자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경계합니다. 부모가 음악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의사가 되라고 강요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딸에게 변호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건 부모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아이로부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조차 돈으로 계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극은 깊어집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결혼과 연애에서도 ‘돈’은 가치 판단의 우선순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은 “번쩍거리는 최신형 자동차처럼 신선하고 생기 넘치는 로맨스”로 해석됩니다. 강 박사님은 “결국 개츠비의 사랑도 탐욕에서 출발했던 셈”임을 지적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집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숨 막힐 정도로 강렬한 분위기를 느낀 것은 바로 데이지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그 집 주위에는 무르익은 신비스러움이 감돌고 있었다. 위층에는 어떤 침실보다도 아름답고 서늘한 침실이 있을 것만 같았고, 복도마다 화려하고 신바람 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았으며, 라벤더 속에 처박아 놓은 곰팡내 나는 로맨스가 아니라 금년에 출시된 번쩍거리는 최신형 자동차처럼 신선하고 생기 넘치는 로맨스가 있을 것만 같았고, 시들지 않는 꽃처럼 무도회가 열릴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이미 많은 사내들이 데이지를 사랑했다는 사실 또한 그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그럴수록 그의 눈에는 그녀가 더욱 가치 있어 보였다.―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에서
 

강 박사님은 왜 자본주의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할까요? 현실과 드라마에서 자주 마주치는 단적인 예로, 사랑하는 남자와 돈 많은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자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감정을 순간적이라고 저주하면서 현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그래서 현재에 살지만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동 준칙은 ‘선(Good)과 악(Evil)’이다. 반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 준칙은 ‘좋음(good)과 나쁨(bad)’이다. 돌이켜 보면 경제적인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를 포기한 여성은 ‘좋음과 나쁨’의 기준이 아니라 ‘선과 악’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여러 가지로 무능력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수용하고 있는 부모나 친구들에게는 악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 그 여자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녀가 지금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삶을 얼마나 ‘좋다’라고 느끼는지 따위는 그들의 안중에 있을 리 없다.―『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자본주의라는 구조 아래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진짜 비극은, 그녀가 자신의 ‘좋음’을 버리고 부모나 친지들이 ‘선’이라고 평가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이 순간 그녀는 스스로 자기 삶의 정수였던 감정을 포기한 거라는 진실을 알까?” 내가 순수하게 추구하는 가치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돈’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진심으로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2월 3일 첫째 주 월요일, SBS 「힐링캠프」에서 강신주 선생님의 이어지는 메시지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돈이 중요한 척도가 된 자본주의 구조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을 향한 ‘돌직구’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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