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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mte de Monte-Cristo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
  • 서중석.김덕련
  • 15,300원 (10%850)
  • 2015-03-18
  • : 83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는 우리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는 여겼지만,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현대사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서중석 교수는 책의 제목에 걸맞게, 그야말로 이야기하듯이 한국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냥 이야기와 다른 게 있다면, 김덕련 기자라는 예리한 질문자가 있다는 점이지요.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알고 있던 상식에 반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가령 한국전쟁을 일으켰던 북한의 전력은 그렇게 위협적인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렇지요. 그러니까 전쟁 발발 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데에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셈입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 말입니다.

 

(...) 이 대통령은 6월 27일 새벽 2~3시경 서울역에 비상 열차를 세워놓고 거기 타버렸다. 서울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장관들에게도, 군 수뇌부한테도, 국회에도 일체 안 하고 혼자 가버렸다. 주한 미국 대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 다른 누구한테도 얘기 안 하고 비서진한테만 얘기해서 그 열차를 끌고 대구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다시 대전으로 올라갔다.

 

위 인용문에서 ‘이 대통령’은 물론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 시작했던 대목이지요.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발 빠르게 피난 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서중석 교수가 이야기해주는 한국전쟁의 전말을 읽고 있노라면, 최근 일어난 메르스 사태를 목도하며 느꼈던 참람한 마음이 슬픔과 분노로 들끓는 것 같습니다.

 

애석하게도, 이승만 대통령은 ‘그냥’ 피신하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대전으로 피신한 이 대통령은 방송국 책임자를 불러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으라는 거짓말 방송을 내보냈지요. 방송을 믿고 피란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가 한강다리가 폭파돼 피란 못 간 사람들은, 서울 수복 이후 부역자로 몰려 모진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내내 엄벌주의로 일관했고, 결국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전국적 학살 같은 인권 유린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선에서 군인들이 피 흘리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임시 수도 부산에서 국회를 위협하면서 영구 집권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전후와 전쟁기간 동안 있었던 민간인 집단 학살의 실상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잔악무도한 나치나 일본군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살은 북한군에 의해 주로 자행된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요. 저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학살 사건들이 우리 안의 악마성을 똑똑히 증언해줍니다. 학살은 1948년 제주 4·3사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51년 거창 민간인 학살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한국군에 의해서, 북한군에 의해서, 그리고 미군에 의해서 민간인 학살은 자행됐습니다.

 

이 책에는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이 실려 있습니다. 이 증언들을 읽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사람 목숨이 소, 돼지처럼 다뤄지던 끔찍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집단 학살 과정에서 ‘빨갱이 새끼는 죽여도 좋다. 빨갱이 여편네는 죽여도 좋다. 빨갱이 애비는 죽여도 좋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입니다. 주민 집단 학살에 법적 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죽어나간 것이지요.

 

여기에는 좌익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만치 과도하게 대응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태도가 큰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어린아이들이 앞잡이가 되어 총과 다른 군기를 가지고 살인, 충화(衝火)하는 데 여학생들이 심악(甚惡)하”다면서 “남녀 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라는 식의 담화문을 발표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 때 잔혹 행위를 체화한 친일파 출신 군인들을 총애했던 사실도 참혹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서중석 교수는 말합니다.

 

서중석 교수가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를 지적한다고 해서 북한에 잘못이 없다고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북한의 전쟁 책임을 희석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나 ‘격동기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반공 투쟁 과정에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는 식의 주장에도 서중석 교수는 답하고 있습니다. 서중석 교수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책임은 너무도 당연하게 물어야 하는 것이며, 최대 잘못이 북한 지도부에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전쟁 책임과 주민 집단 학살의 책임은 성격이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미국에게 학살 책임을 추궁하는 것에 대해 ‘한국전쟁 때 북한을 막아내고 우리를 구해준 고마운 미국에 대한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라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에게 서경석 교수는 “인간의 양심과 양식에 어긋나는 주장”이라고 반박합니다. 미군이 북한을 막은 것과는 구분해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서중석 교수가 특별히 민간인 학살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해마다 6월이 오면 어김없이 ‘잊지 말자 6·25’를 강조하는 보도가 적지 않다”는 김덕련 기자의 질문에 대한 서중석 교수의 답변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잊지 말자 6·25’, ‘상기하자 북괴 만행’ 같은 것들은 1950~1970년대에 많이 나왔던 구호들이다. 아주 강렬한 색체의 그런 반공 구호들이 지금도 적절한 건지 생각해봐야 한다. (...) 그 속엔 수십 년 동안 꽉 막혀 질식된 것들이 있었다. 뭐냐 하면, 한국전쟁 기간 동안 학살 피해를 비롯한 엄청난 수난과 고통이 발생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서중석 교수와 김덕련 기자는, 극심한 반공 독재를 겪으며 우리 눈에 씌워졌던 비늘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민간인 대량 학살은 철저한 극우 반공 독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량 학살을 경험하면서 국가 권력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았으니까요. 우리는 지금 반공 독재체제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 영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 싶습니다. 요즘도 포털사이트의 정치 뉴스 덧글에는 어김없이 ‘빨갱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런 단어를 거리끼지 않고 쓰는 이들이 교육수준이 낮아서 그러는 게 아니지요. 그 말이 이 사회에 잘 먹혀드니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여전히 정치인 중에도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는 이들이 있으니, 더 말해야 입 아픈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빨갱이’이란 단어가 우리 사횡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건 ‘빨갱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사회라는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진보라고 자임하면서도 현대사에 무심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을 통해 유족들을 위로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잘 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니, 그런 노력 없이 이 나라가 잘 되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시리즈가 활발하게 이어져서, 서중석 교수가 뉴라이트 학자들의 주장을 철저하게 논파해주길 기대합니다. 부정적인 역사 말고 긍정적인 역사를 말하자고요? 아니요. 역사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중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김덕련 기자의 다음 말을 제 가슴에 새기며 글을 닫으려 합니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건 제국주의, 분단, 독재 같은 역사의 오물이 아니다. 그런 역사의 오물에 맞서면서 그 문제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 것, 자랑스럽게 여길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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