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후유코는 고미네 집안 네 자매 중 막내다. 후유코는 성격이 특히 예민하고, 한동안 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후유코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약간 창백한 빛을 띤 하얀 피부, 살갗 밑으로 정맥이 파랗게 비칠 정도로 안쓰러운 느낌을 자아낸다고. 또... 뭐랄까. 마야콥스키나 자살한 러시아 시인 예세닌의 시집을 읽고 있기도 하고, 에세닌이 사랑했던 보스호라스 바다를 보는 걸 꿈꾸기도 하는 여성이랄까. 그렇지만 이런 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무언가가 후유코에게는 있다.
후유코는 나카가키 노보루라는 카메라맨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게 계기가 되어 도쿄에서 라디오 어시스턴트를 맡게 된다. 후유코는 라디오 방송일을 하면서 도쿄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화려하고 번잡한 도쿄의 분위기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후유코에게는 확실히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다음은 후유코의 말이다.
“... 모든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받고 싶기는 하죠. 그렇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원래 크기의 나를 여러분이 좋아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나를 크게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작위적인 내 모습에 호감을 가져주기를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어요. 그런 건 뭔가 답답하잖아요.”
이런 후유코에게 나는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마음을 주게 된다. 이를 테면 후유코의 다음과 같은 생각이 좋다. “사진을 찍어버리면 왠지 방심하게 되거든요. ...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내 마음속 필름에 평생 단 한 번뿐인 이 거리를 낙인으로 찍어두고 싶어요.” 그런 후유코는 첫 잠자리를 갖은 뒤 남자로서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가와모토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스스로 싸우고 스스로 구원을 얻어야 해.”라는 후유코 자신의 말대로, 그녀는 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은 내가 온전히 읽어낸 이츠키 히로유키의 첫 소설이다. 도서관에서 <청춘의 문>을 뒤적여본 적은 있지만, 무려 7권에 이르는 그 대작을 다 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히로유키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가 쓰는 소설은 특히나 남성적이고 굵직굵직한 서사가 주를 이룰 거라는 선입견을 나는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인상 때문인지 그가 네 자매 각각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는 소식에 갸우뚱했던 것도 사실이다. 남성 작가가 과연 네 자매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좀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페이지 몇 장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를 벌써부터 구분지어 문체나 캐릭터 묘사를 떠올렸던 내 촌스러운 지레짐작이 겸연쩍어졌다.
소설의 말미에 후유코는 셋째 언니 아키코가 하려는 환경운동이 자신이 느껴왔던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울증은 어쩌면 그런 지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 원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제 아픔을 이겨내면서 세상을 향해 내딛는 후유코를 응원하고 싶다. 비록 그 길에서 상처 받고 쓰러지게 될지라도, 계속 전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