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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mte de Monte-Cristo
  •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 헤르만 헤세
  • 12,600원 (10%700)
  • 2015-01-19
  • : 621

책을 처음 펼쳐들고 목차를 훑어 본 후, 내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소송>과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 관한 헤세의 서평을 읽고 나서, 이 책이야말로 내게 2015년 최고의 책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향후 몇 년간 나는 서재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이 책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그리고 나는 이 책에 실린 헤세의 서평과 작가론을 게걸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것은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돈을 물어줄 수도 있다고 내기를 걸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고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읽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서재에서 내가 좋아하는 고전들, 특히 불멸의 고전들을 바라볼 때면 안타깝다. 스탕달, 피츠제럴드, 플로베르,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작품들을 썼는지 알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토록 오래 바라던 ‘읽기의 최고 경지’를 헤세의 책은 보여준다. 무엇보다 나는 헤세를 두고 “경탄의 제왕”이라고 부르고 싶다. 헤세는 동료 작가나 작품을 추켜올리는 일을 거리끼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두고 “문제 많은 시대, 문제 많은 세계에서 문학이 이보다 더 높은 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고 했으며, 카프카를 두고는 “도이치 언어의 감추어진 대가이자 왕”이라고 했다. 이처럼 우아한 찬사라니!

 

헤세가 읽은 책의 저자들에 대한 애정이 헤세의 이 책에는 충만하게 깃들어 있다. 특히 내 마음을 두드렸던 헤세의 글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리카 에발트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헤세는 당시 막 데뷔한 츠바이크의 소설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이 작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츠바이크는 이야기꾼으로서는 아직 완전히 여물지 못했지만 아주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며, 그것은 온갖 기교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첫 작품에 이어 뛰어난 후속 작품이 나오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좋은 독자와 친구 들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후배 작가를 격려하는 헤세의 자상함이 물씬 풍기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헤세의 작가론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작가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재미도 일품이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글이 그랬다. 누가 도스토옙스키의 진짜 독자가 될 수 있는가에 관해 논하면서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망연히 삶을 건너다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인함을 더는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도스토옙스키는 편안한 삶에 자족하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작가라는 뜻이겠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이유를 이토록 곡진하게 포착해낸 글이 있던가. 헤세 덕분에 고통의 시간에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나는 깨닫게 된다.

 

이런 팔방미인형 작가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질투하게 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이렇게 서평까지 잘 써버리면 서평가(이런 직업이 당시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같은 상념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내가 놀랐던 것은 헤세의 독서편력이 동양의 고전과 문학에까지 미친다는 점인데, 헤세의 관심은 공자, 노자, 열자의 경전에서 불교 고전과 <요재지이>나 <홍루몽> 같은 소설에까지 닿아있다. 헤세는 무려 3000여 편의 서평을 썼고, 책으로는 여섯 권 분량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 가운데 일부를 뽑아 모은 것이다. 이 책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헤세의 나머지 서평들도 책으로 묶여 나왔으면 좋겠다. 2년이 지나도 출간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독일어를 공부해 원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상념이 들만큼 헤세의 나머지 글들이 내게는 간절하다.

 

이 책에는 내가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들이나 작품들에 대한 서평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정은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읽지 못한 작품들과 들어 보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헤세의 글들을 읽으며 나는 반드시 그 작품들을 찾아 읽겠노라고 다짐한다. 헤세의 글들에는 그것이 다루고 있는 작품과 작가를 기어코 찾아 읽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말은 내가 ‘책에 관한 글’에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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