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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 옹달샘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하인리히 뵐
  • 8,100원 (10%450)
  • 2008-05-30
  • : 16,334

외국에 여행을 가서 가끔 현지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이 통하기는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 와중에 외모, 언어, 문화라는 장벽이 엄청나게 막강하다는 걸 느낀다. 피상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 소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누군가가 하는 이 말을 내가 과연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비현실감이 드는 어느 여행 중에 문학의 위대함을 느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으로서 같은 걸 느끼고 공감하게 만드는 게 예술의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장벽을 넘게 해주는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백 년 전 독일에서 태어난 작가가 당시 사회를 그린 이 소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너무 실감나게 와 닿는다. 가정부로 착실하게 살아오던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어느 날 우연히 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냈는데 나중에 보니 이 남자가 수배중인 은행 강도였다. 경찰은 수사를 한답시고 카타리나의 주변과 과거 행적을 파고들고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로 가세한다. 언론에 의한 폭력으로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이 두고두고 읽히는 가운데 작년에 한 진보 정치인의 자살과 관련되어 이 책이 다시 호명되어 주목을 받았다. 누군가가 그의 ‘아내의 운전기사’를 언급했는데 한 일간지가 사실 확인 없이 ‘아내의 운전기사’에 대한 논평을 실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물론 이 사건과 그의 죽음은 직접 관계가 없지만 언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아찔한 사건이었다.

 

주인공을 집요하게 취재하여 파멸로 몰고 간 기자도 결국 파국을 맞는다. 이 결말은 소설로서 누릴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 아닐까. 주인공이 치를 대가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소설에서는 이렇게 안타까우면서도 통쾌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쉽게 잊히지 않는 복잡한 장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다.

 

작가 하인리히 뵐은 약 백 년 전에 태어났던 독일의 저명한 소설가로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실제 있었던 비슷한 일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래 기사의 자세한 설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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