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읽었을 때, 우아한 제목 뒤의 비극적인 이야기였다는 걸로 기억된다. 다시 읽게 된 계기는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한 나의 관심이 달라지는 걸 느껴서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서 그대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피부가 지성이라 주름이 상대적으로 늦게 생기고, 머리는 염색을 했고, 옷차림과 체형이 예전과 달라진 게 없어서 그대로라고 보이는 것 같다. 한 때 젊었을 때는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기를 바랬던 적도 있다. 어려서 말이 안 먹힌다 혹은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헤어스타일에 항상 웨이브를 넣고 성숙해 보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천천히 변화를 겪고 싶다는 바램을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병원에 갔다가 정확히 5년 만에 같은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바쁘고 인기 많은 의사지만 ‘아, 이 분에게도 세월이 지나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은 누구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 이 책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젊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데 서론이 길어졌다. 아무튼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도리언 그레이가 떠올랐다.
책 속에서 화가 바질이 젊은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초상화가 나이를 먹고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을 계속 유지한다. 무려 18년 동안이나. 초상화는 나이가 들 뿐만 아니라 도리언의 타락과 방탕에 빠진 영혼의 추악한 모습까지 담고 있다. 도리언을 향락과 타락의 길로 안내한 것은 바질의 친구 헨리이다. 결국 바질은 도리언의 손에 죽고 도리언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쾌락과 아름다움의 극한이 도리언에서 만나는 것 같다. 하지만 도를 넘는 극한은 파멸을 맞는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에 속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파멸마저 초상화를 찢는 것으로 그려져 극한의 미가 느껴진다. 소설 속의 묘사와 대사도 아름답고 현란하다. 초상화가 늙고 추해가는 과정을 보며 처음에는 사람의 영혼이 남기는 흔적에 대해 음미하게 되었는데 다 읽고 나니 한편의 비극미를 간직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쾌락과 미의 추구, 예술의 숭고함, 인간의 굴레가 얽혀 있는 한 편의 예술이다.
p241
그를 파멸시킨 것은 바로 자신의 아름다움이었다. 자신이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아름다움과 젊음이 자신을 파멸시킨 것이었다. 아름다움과 젊음만 없었다면 그는 인생을 오점 없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젊음은 모조품에 지나지 않았다. 젊음이 기껏해야 무엇이란 말인가? 새파란, 미숙한 시기이고 얄팍한 심사를 가진 때이며 병약한 사고를 지닌 기간일 뿐이었다. 왜 자신은 젊음이란 제복을 입고 있단 말인가? 그 젊음이 자신을 망쳐 놓았다.
아름다움과 젊음의 자리에 많은 것을 대신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식, 재능, 학벌, 권력, 명예, ...... 유미주의에서 얻은 깨달음인가. 유미주의자로서 경계해야 할 것을 알리는 건가. <행복한 왕자>의 저자라는 걸 떠올려 보면 어쨌든 아름답다.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 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