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성이 느껴지는 추리소설
포와로 2007/09/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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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광고중에서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 영화 홍보 광고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체리필터의 경쾌한 노래와 함께 어우러지는 나문희와 동물 가면을 쓴 세 남자들, 그리고 <당신은 반드시 웃게 될거예요>라는 문구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 개봉에 맞추어 <권순분>의 원작 소설인 <대유괴>도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은 '주간문춘'이 선정한 20세기 걸작 미스터리 1위에 등극한 전설적인 작품이다. 미야베 미유키나 <점성술 살인사건>,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등을 모두 제치고 이 작품이 1위에 올랐다니 경이로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출간된 연도는 7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4공화국 10월 유신 때이지만 지금의 독자가 이 작품을 읽어도 탄성이 저절로 나올만큼 이 작품은 내용이 경쾌하고 발랄하면서도 견고하고, 치밀하여 지금의 독자에게 놀라움을 가져다 준다. 70년대에 이 작품을 지은 덴도 신이라는 작가에게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의 수작이라고 생각되며, 덴도 신의 새로운 작품들도 국내에 소개되기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 한 작품만으로도 독자는 작품성에 반하고 작품의 유머와 정성, 사랑스러움에 반해 <당신은 반드시 웃게 될거예요>. 이 작품은 추리소설의 장르 구분 원칙에 따라 도서추리소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이 작품은 국내에는 권순분 여사로 소개된 야나가와 여사를 납치하는 3인조 일당, 즉 무지개 동자들의 범행 모의와 범행 과정이 전부 독자에게 제시되며, 둘째로 3인조 납치단의 의도와는 다르게 무지개 동자들의 범행권을 빼앗아 몸값과 납치공개방송 등을 지시하는 82세의 야나가와 여사의 범행계획이 전적으로 독자에게 공개되고, 셋째, 정체가 알려진 범인(즉 야나가와 여사와 무지개 동자들)과 경찰(필사적으로 여사를 찾으려는 경찰 이카리 등)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도서추리소설의 요소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경찰이 주인공이 아니라 범인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빵(:교도소)에서 나오기 전부터 야나가와 여사를 납치하기로 하는 3인조 일당인 겐지와 마사요시, 헤이타는 대재벌인 여사를 납치하기에 앞서 완전범죄계획을 하나둘씩 실시해 나간다. 먼저 자동차와 피해자를 숨겨둘 맨션 등을 구입하고, 여사의 저택 앞에서 여사의 하루 일과와 걸음을 하나둘씩 샅샅이 조사해나간다. 거대한 삼림이 우거진 고장이 이 작품의 배경인데, 이 작품의 배경인 작품의 트릭과 함정, 분위기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들을 해주고 있다. 여하튼 여사를 납치하기에 앞서 무지개 동자 3명은 온갖 고생과 시련을 겪게 되는데, 이 과정들이 매우 유머러스하고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무지개 동자들은 흉악한 범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는 매우 매력적이고, 귀엽게 그려져 있다. 명민한 두뇌를 가지고 범죄를 계획하는 리더인 겐지, 그리고 우둔하고 큰 덩치의 마사요시와 막내인 헤이타. 여사를 납치하기 위해 많은 단서와 자료를 모으고, 그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배설물(?)도 땅에 잘 파묻는 치밀함을 보인다. 때마침 먼 친척 처녀와 함께 자신이 가진 거대한 삼림을 누비며 등산을 즐기던 여사는 마침내 무지개 동자들에게 납치되기에 이른다. 납치과정은 대단히 당황스러운면서도 재치있게 그려진다. 선그라스와 스타킹, 마스크 등을 뒤집어 쓰고 여사를 위협하는 일당들과 일당들을 논리적인 추리로 호령하면서 주도권을 잡아내는 야나가와 여사. 야나가와 여사는 오히려 일당의 범죄를 도와주고, 궁지에 몰린 그들을 위하여 대단히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고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야나가와 여사가 자신을 납치한 무지개 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에서는 배설물을 찾아내는 형사는 보이지만 피가 보이지 않는다. 죽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이 소설은 엄청난 거액을 둘러싼 일대의 살벌한 납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 화기애애함이 넘쳐난다.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사회복지사업에 힘쓰고 인간미와 인간애가 넘쳐나는 명민한 할머니인 야나가와 여사, 가슴에 상처를 품고 있지만 야나가와 여사에게 그리움을 느끼는 겐지, 그리고 우둔하지만 선량함과 순수함을 가슴속에 간직한 마사요시와 헤이타, 그리고 서서히 마음을 바꾸어 가는 여사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사건의 범인을 추리해내는 형사에 이르기까지, 작품 전체에는 유괴라는 사건이 가져다주는 팽팽한 긴장감과 복선에 더하여 문장의 견고함과 정성이 가져다주는 훈훈함과 즐거움, 밝음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야나가와 여사의 납치에 성공한 무지개 동자들은 기뻐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궁지에 몰렸음을 여사에게 인정하고, 여사에게 자신이 어쩌면 좋을지 조언을 청한다. 매우 코믹한 설정이 아닐 수 없는데, 여사는 이들을 여사가 가진 천재적인 두뇌를 활용하여 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티비와 라디오에 공개되는 여사의 모습과 범행과정, 그리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편지, 그리고 대단한 방법으로 옮겨지는 100억엔의 몸값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시종일관 놀라운 복선과 트릭,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진다. 그리고 인간적인 따뜻함도 이에 못지 않게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작품이 가져다 주는 거대한 스케일, (미국의 모함까지 동원될 정도의) 자연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소박한 인간미와 행복 등의 다양한 재미와 주제도 이 작품에서는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의 사소한 즐거움,- 불상을 어떻게 만들지 생각하는 야나가와 여사 -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 영화는 이 부분들을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영화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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