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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보고서라는 이름의 콜롬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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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년 전,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퍼 콜롬바인>도 봤고,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당시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가 쓴 책이다)도 읽은 터라 이 사건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 읽기 시작한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깨달았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1
중간중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콜럼바인 사건 이전에도 고등학교에서의 총기 사고는 없지 않았다. 다만 콜럼바인에서는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근 4시간여를 미국 전역, 심지여 다른 나라까지 생중계로 이 사건을 지켜봤다.(가해자는 사건 발생 직후 불과 1시간도 안 되어서 자살했지만 결국 4시간이 지나서 확인되었고 그 사이 몇몇 부상자가 사망했다) 또 하나, 그 이전과 다른 점은 모든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시대에 맞이한 사건이라는 점도 있다.
#2
대부분의 사상자가 난 학교 도서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대목에서 단원고 기억교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지점도 닮았다. 우리는 콜럼바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러했을까?
#3
주 당국은 사전 위협을 인지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축소 은폐를 위한 공모 회의도 열었다. 이 사실은 근 4년이 지난 2003년에 밝혀졌다. 경찰 당국의 대처도 미흡했다. 인질극이 아닌 묻지마 총격에 대한 대처 방법에 무지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이후 FBI보고서에 담겼고 이후 개선 방안이 마련되었다.
#4
가해자인 두 학생은 자살했다. 피해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표적, 분노의 대상이 필요했다. 가해자의 가족이 지목되었고 가해자는 '괴물'이 되었다. 배를 버리고 떠난 선장, 유병언 회장, 구조하지 않은 해경, 박근혜, 그리고 언론... 이 또한 비슷한 패턴이다. 하지만 이런 분노의 대상 찾기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과 재발 방지에 커다란 걸림돌을 마련할 뿐이지 않을까. 손쉬운 해결책, 속 편한 증오의 대상 찾기는 어쩌면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에 가장 커다란 경계 대상이어야 할 것이다.
#5
이 지점에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왜?'이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나는 '어떻게?'라고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손쉬운 '왜'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 집요하게 '어떻게'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