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장남으로 태어나지 않은 까닭에 친가의 사랑은 받지 못한 반면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어릴 적 내가 들은 옛날이야기 대부분은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것이다.
“운동보다도 운동가를/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고백하자면 발터 벤야민의 철학과 사상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를 둘러싼 어떤 분위기가 좋았다. 그의 사유나 이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여기저기 인용되거나 언급되는 그의 글은 어릴 적 옛날이야기처럼 매혹적이었다. 특히 그의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다.
누군가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인권활동가들을 ‘인권의 저자’라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영락없는 이야기꾼들이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 또는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마을에 오면 대청마루에 붙들어 앉혀놓고 마을의 유구한 전통을 주절주절 풀어놓는 ‘어르신’이 아니라 부엌 아궁이 근처에서 들을 놈은 들으라는 듯 무심히,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마을의 숨겨진 내력을 풍문처럼 읊조리는 할머니 같은 이들.
이 저널이 그런 이야기꾼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권저널 준비모임(이제 ‘준비’자를 떼야겠지만)에 내 마음대로 “이야기꾼에 대한 이야기”라는 구절을 슬쩍 달았다. 좀 더 공식적으로는 기획편집위원회라 할 수 있는 이 모임은 6읠 첫 모임을 시작으로 저널이 발간이 되기까지 총 여섯 차례의 모임을 가졌다. 첫 모임에서 저널의 편집 방향을 함께 기획하고 토론을 통해 같이 원고를 생산하는 작업 방식으로 잡았고, 이후 매번 모일 때마다 네댓 시간을 훌쩍 넘기는 토론이 이어졌다. 거기서 나왔던 글들이 보태어지고 깊어지며 이렇게 원고가 되었다. 목차의 구성은 물론 각 원고의 내용까지 함께 검토하며 인권저널은 이제 창간호를 세상에 내놓는다.
첫 번째로 실린 ‘이야기에 기대어 말을 이어간다’(류은숙)는 부제 ‘인권운동을 묻다’에서 알 수 있듯 그동안의 인권운동을 돌아보고 있다. 하지만 연도 별, 사안이나 의제 별 접근이 아닌 인권운동이 그간 어떤 이야기를 해왔는지, 인권운동의 언어가 무엇이었으며 어떠했는지를 통해 인권운동과 인권운동의 언어가 가진 현재적 의미를 짚은 독특한 회고이다. 류은숙의 글이 인권운동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나영정의 ‘정체성 정치, 교차성 정치, 인권의 정치’는 인권운동이 피해자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피해를 승인하는 권력에 맞서 어떻게 피해자의 자리에서 이동할 것인가라는 당면한 현실에서 솟아오른 질문들을 담았다.
창간호에 걸맞게 인권운동에 수많은 영감을 주었던 연구자 엄기호,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미디어활동가인 김일란 감독, 본지 편집위원이자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공동대표인 김영옥, 이렇게 세 분을 모시고 ‘고통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를 주제로 좌담을 진행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고통의 소통 불가능성’에서 출발했지만 어떤 가능성을 간간히 엿보이며 현재의 인권운동, 그리고 이 저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환기하고 그래서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자리였다. 이 좌담은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이 진행한 <고통 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기록할 것인가> 연속 강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평등에 거듭 도전해야 한다면’(미류)과 ‘변혁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정정훈)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제언이다. 미류가 인권운동의 자리 이동을 통해 ‘함께 실패하는 연대’로 세력화의 모색을 구상하고 있다면, 정정훈은 1990년대 이후 인권운동을 ‘2세대 인권운동’으로 이름 붙인 뒤 근 25년간의 전개 과정을 짚어보고 3세대 인권운동으로의 전환을 주문한다. 두 글 모두 새로운 만큼 여러 개의 물음표가 달릴 수 있는 주장을 담고 있기에 더욱 많은 이견과 의견, 응답을 기대한다.
글이, 저널리즘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기보다는 세계를 망가뜨리고 사회를 파괴하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거기서 인권운동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잡지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보다 고단한 무대 뒤에서, 광장의 중심이 아니라 그 언저리에서, 바로 지금도 후미진 뒷골목 어딘가에서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꾼들 덕분이다. 그들과 어깨를 같이하며, 그들과 연루되어 오늘의 인권 현실에 눈 감지 않는 더 많은 이들과의 마주침을 꿈꾼다. 이야기는 또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