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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브 (반양장)
  • 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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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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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묵은 기억을 마주하는 용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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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평론가 김이구 선생은 SF가 현대 사회의 특징을 “무한한 시공 속을 비약하여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과학소설의 새로운 가능성’, [창비어린이] 제3권 제2호, 2005, 169쪽. ) 2057년, 기후변화와 전쟁으로 순식간에 물에 잠긴 근미래의 서울을 그린 SF [다이브]는 오늘 우리의 어떤 모습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을까? 


투발루의 외교장관이 바닷물 속 연설로 해수면 상승 위기를 절박하게 호소했던 게 지난 해 11월이었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면전을 시작하며 전 세계를 경악시킨 것도 불과 몇 달 전이다.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감안할 때 기후위기와 전쟁은 막연히 먼 미래도, 막연히 먼 나라의 얘기도 아닌 긴박한 현실이다. 2022년과 닮은 꼴을 한 [다이브]의 세상은 그래서 놀랍지만 그렇기에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보다 주목할 것은 이 서울엔 ‘말’이 없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묵혀 둔 과거에 얽매여 있다. 소리조차 잠기는 물속을 반영하듯 수몰된 서울은 인물들의 말하지 못했던 과거, 즉 오늘의 서울을 스란히 품은 채 깊이 잠겨 있다. 서울은 어떤 곳인가?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 ’라는 첫문장에서처럼 대한민국의 대명사인 이곳은 한 나라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살며 북적이고, 가장 많은 말을 쏟아내는 곳이다. IT 강국답게 숱한 말과 의식, 기억과 경험은 디지털화 되어 제한된 시공간을 넘어 누구와도 쉽게 공유되고 인간 수명보다 오래 보존될 수 있다. 반면 실제 삶의 공간은 높이 치솟은 아파트이든, 점점이 박힌 원룸과 고시원이든 벽 너머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타인과 살갑게 질척댈 일 없고, 심지어 살았다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기도 쉬운 곳이다.  


기계인간 수호와 노고산의 삼촌 경은 이러한 오늘의 서울이 미래에 투영된 상징적인 인물이다.  

수호는 고인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구현하는 시냅스 스캐닝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이다.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에게 부모 노릇을 더 연장해 주는 놀라운 기적의 기계이다. 하지만 수호는 육신이 아닌 기억으로만 존재가 증명되며 언제든 삭제되고 제거될 수 있는 불안정한 존재이다. 수호의 불안정함은 일차적으로 기계의 몸에 인간의 기억을 심었다는 데서 비롯하지만, 그토록 자식을 붙들려 하면서도 막상 기계 자식과 소통하지 못하고 함부로 기억을 삭제, 몸을 바꿔 버리는 부모에게서 더 심화된다. 수호는 “역사와 함께 숨 쉬고 있지만 역사가 되기에는 부족”(137)했고, “없어진 것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눈앞에 다시 불러낼 수 있었던 세상이, 그게 너무 당연해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간직할 필요가 없던 세상”(131)의 씁쓸한 잔재이다.  

모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경은 모친과 같은 병실에 있던 수호의 과외를 맡으며 수호와 연을 맺는다. 경은 수호와 툴툴거리면서도 모친을 보러 오는 길에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수호를 만났다. 그러나 늘어나는 병원비에 허덕이는 그는 취업전선에 내쫓겨 통장 앞에 떳떳하지 못한 청년이고 만다. 일자리가 없어 대학원을 가고, 취직해도, 받는 월급 족족 대출금 상환에 쫓기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결국 경은 푸념과 한탄 속에 수호와 단절하는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 살가운 말 한마디 못 건넸다는 죄책감으로 이후를 고독하게 살아간다. 

급속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돈이 많은 수호의 부모는 기계에 기억을 저장하여 자식이 원치 않는 삶을 지독하게 연장한다. 반면 돈이 없는 경은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진작 치료를 중단하고 돈 들 일도 없었을 모친의 생명을 꾸역꾸역 연장하며 돈에 쫓긴다. 하루하루 고단하게 사는 경에게 수호는 고통스러울 것 없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신과 너무 다른 새로운 기회의 몸이었다. 둘 다 생명을 연장해 보겠다는 발버둥이건만 수호와 경은 서로 이해하기엔 너무나 양극단에 놓여 있었다.  


이렇듯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기억은 인물의 오늘을 옭아맨다. 과거에 묶인 채 새로운 기회로 시원하게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합소가 노고산이다. 그들은 희망의 땅인 양 강원도를 언급하지만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경의 품에서 물꾼으로 정착한 아이들, 선율, 지오, 우찬 등은 다하지 못한 말을 오해 속에 품은 채 다만 하루를 보낼 뿐이다. 선율은 우찬의 죽어가는 누이 유안을 죽게 놔둔 경 때문에, 지오는 노고산에서의 존재감이 조연을 넘어 엑스트라로까지 밀려 버려서, 우찬은 누이를 살리지 않은 경이 한스러워서, 지아는 강원도로 떠난 언니가 서럽고 노고산에도 끼지 못해서, 수호는 ‘억지로 끌려와 삶에 내던져져서’(153) 울분을 갖고 죄책감도 느끼고 한탄도 한다. 기억이 단절된 수호와 선율 등 사이에도 “예전을 기억하는 사람과 그 이후만을 살아온 사람의 차이”(58)만큼 큰 거리가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온통 번잡스럽다. ‘사고는 예전에 났어도 사람 마음 속에서 끝이 안 난다.’(121)고 했던가. 그렇기에 소리조차 잠기는 물 속에서 서울의 흔적을 더듬으며 아이들은 말할 수 없었던 과거를 맴돌고 있다. 


생각과 감정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밭아질 수 있을까? 못한다. “하지 못한 말들은 너무 가벼워서 그걸 담고 있는 몸이 그만 붕 떠 버리는 것만 같고,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것조차도 아주 먼 느낌이”(96) 드는데. 주절주절 지난 과거를 내려놓으라는 지오에게 “제대로 말하는 법을 모른”(116)다며 비꼬는 우찬이지만, 제대로 말 못하는 건 지오만이 아니었다. 

 노고산 인물들의 견고한 매듭은 수호로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기억하는 것만으로 인격을 정의할 수 없기에 사람이기도 애매한 수호는 타인과 대화하기도, 타인을 이해하기도 가장 어려운 존재이다. 그러나 공기통이 없어도 물속을 오랜 시간 유영하는, 애매한 그 조건 때문에 수호는 자신의 과거를 과감하게 탐색할 수 있었다. 사실 노고산 아이들은 튀어나올 듯 말 듯 불편한 감정에 균열을 일으켜 줄 무언가를 기다렸던지도 모른다. 잠겨 있던 과거를 직면하면서 비로소 안정감을 얻은 수호처럼 진심으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무튼 수호에게는 뼈아픈 고통을 되새기는 일이었지만 과거를 추적하는 그 의지와 용기가 결국 선율과 지오, 우찬, 그리고 경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 준다.  


최근 아동청소년문학에서도 SF 작품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첨단 기술을 반영하는 다양한 소재, 과학적 토대로 이루어지는 그럴 듯한 예견과 흥미진진한 상상 가운데 다수의 작품들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인간성에 관한 새로운 탐색을 시도한다. 그래서 작품이 그리는 시공간은 미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앞서 김이구 선생의 말처럼 현재 사회를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더 기능한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몰된 대한민국은 오늘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침묵 속에 가라앉는 인간 관계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소리마저 잠긴 서울, 저마다 마음 깊숙히 털어내지 못한 외로움, 죄책감, 고통과 연민에 뒤죽박죽된 마음으로 속으로만 삭아가는 한국.   

오늘 우리는 기후변화와 전쟁을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단절은 얼마나 염려하고 있을까? “솔직해진다고 해서 꼭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어도 문제를 풀려면 솔직해져야 하는 것 같아”(101)고 한 것처럼 작품은 지금 내 곁에 선 그 사람에게 진심을 내라고 ‘다정한 감각’(104)을 건네고 있다. 이 작품을 읽는 누구나 수호처럼, 선율처럼 순순하게 묵은 과거와 마주하는 용기를 내기를,  오랜 자책과 미안함과 원망을 차례대로 내려놓고(161) 새로운 삶을 유영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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