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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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의 달콤한 유혹
 전출처 : urblue > 2004년 베스트

한 해 나의 독서량은 많아야 50여 권, 평균 30~40권 정도이다. 내킬 땐 제법 열심히 읽다가도 지겨워지면 몇 달 씩 책에 눈길도 주지 않곤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대략 70권 가량 읽었다. 상반기 2~3달 간 놀았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숫자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독서 시간이 늘었다는 점과 서재활동을 통해 자극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70여 권 중 하반기에 본 것이 50권에 육박하니,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서재 주인장들의 리뷰나 페이퍼를 보고 있자면, 눈은 글을 따라가도 손은 어느새 ‘보관함에 담기’를 누르고 있으니 당연히 읽는 책도 늘어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집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서재에 올라오는 글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무튼 딴 짓 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이런 걸 줄이면 내년에는 100권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 읽은 70여 권 중 베스트. 가장 최근 읽은 것부터 소개한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 정수일

정수일 선생이 간첩 혐의로 구속되어 석방되기까지 약 4년 간 아내에게 보낸 옥중편지 모음이다. 선생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 우리 민족과 조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 학문에의 진지한 열정, 아내에 대한 사랑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良識)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는 선생의 삶의 화두도 그렇고, 감옥 안에서도 생의 시계는 쉼없이 돌아간다며 헛되이 시간을 버리지 않으려는 의지도 그렇고, 나 같은 범부가 좇을 엄두나 낼 수 있을까 싶지만, 선생의 말씀대로 牛步千里의 마음가짐으로 정진한다면 내 삶이 무위(無爲)의 낙과(落果)가 되지만은 않을 것이리라.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 정문태

베트남 전쟁 이후로 더 이상의 전쟁은 알지 못한다. 간혹 신문 구석에 분쟁 지역의 기사가 올라와도 그것이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종군기자가 아닌 전선기자 정문태가 말하는 세계 곳곳의 전쟁과 참상을 통해 20세기를 다시 볼 수 있다.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시각(視覺)을 바탕으로 인간다움과 인간이 이루어 온 문명의 본질을 통찰하는 독특한 시각(視角)의 거대한 아포리즘. 의미 뿐 아니라 재미면에서도 뛰어나다. 한번 잡으면,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절대 놓을 수 없는, 아주, 굉장히, 너무나 훌륭한 작품. (더 이상 표현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아포리즘으로 읽힌다면,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반대의 경우이다. 불과 100여 페이지에 여백도 많아서 별로 읽을게 없다. 짤막짤막 끊어지면서 서사(敍事)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문장도 낯설다. 그런데, 그 짧은 문장 사이에 엄청난 공간과 시간이 느껴진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기까지,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사건과 의미와 감정이 진동으로 전해진다. 여백의 미, 혹은 행간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저절로 알 수 있다. 오래도록 여운과 잔향을 느낄 수 있는 소설. (21살의 나이에 이런 소설을 써 내는 인간은 대체 뭐냐.)

 

 

  

최민식

전쟁 뒤의 폐허를 배경으로 선 사람들의 남루한 모습이 애처롭고 가슴 시리지만, 와중에도 그들은 웃고 있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때론 절망하거나 무기력하게 쓰러지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을 렌즈 너머로 바라보며 최민식 선생 역시 가끔은 눈을 붉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따뜻하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클라우스와 루카스라는 쌍둥이 형제의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 인간의 본성, 존재의 의미, 절대적인 고독과 죽음 등 묵직한 주제들을 지극히 건조한 시선과 문체로 담담히 그려낸다. 작가가 보여주는 충격적인 상황과 모순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알라딘 리뷰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독하게 매혹적이다.

 

 

 

 

  

환상의 책 – 폴 오스터

폴 오스터의 전 작품을 읽은 것도 아니고, 읽은 게 전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지만, 폴 오스터는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는 훌륭하다기보다는 뛰어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훌륭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현실과 환상의 틈바구니에서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묻고, 궁구하고, 탁월한 묘사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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