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은 과거사를 다루는 특정 방식이 지닌 한계를 우리에게 드리내준다. 경험과 문서에 의존하는 역사학적 방법론-내가 1621년 반다제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연표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방법론-은 결정적으로 언어, 문자 문화, 저술에 의존한다. 이런 방법론에 쓰이는 증거는 주로 문자 기록에서 나온다. 그 방법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언어를 갖지 못한 개체들은 오직 인간이 펼쳐가는 드라마의 배경으로서만 등장한다. 육두구·정향·화산은 이 같은 이야기에 등장하지만, 역사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그들 자체가 배우일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없다.-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