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에는 반드시 어떤 유용성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기왕이면, 좋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다. 적어도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지 50년간 고민해왔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모두를 담을 수는 없다. 모두를 담는다면 독자는 불편해한다. (그런 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의문은 무시하더라도) 그러면 독자는 그런 소설을 찾지 않는다. 읽지 않는다. <가호>에서 가호가 이야기를 만들 때 독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소재나 진행을 경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현실감각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되 완전한 현실을 보이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을 ‘가공’이라고 부르겠다. 마치 칼을 가는 것처럼 뭉툭한 현실을 갈아 허구에 담는다. 겉은 판타지지만 내용물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나 독자나 모두 기꺼이 허구의 세계에 몸을 담근다. 그리고 글쓰기가 끝나거나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소설가는 학자처럼 ‘좋은 이야기에는 반드시 어떤 유용성이 포함되어있다’는 식으로, 단정하여 말하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추지 않는다. 은근하게, 독자의 몫도 남겨 놓는다. 그렇다고 독자가 너무 지분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선을 지켜야 한다.
<가호>는 여러 경계에 대해 말한다. 현실과 허구, 상상과 실현, 그리고 나는 여기에 소설가와 독자의 경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의 느낌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판타지의 외피를 쓴 소설을 잇달아 내며 독자들에게 꽤나 시달렸던 거 같다.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자신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 이번 <가호>라는 느낌이다.
납득되지 않는 몇 가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 와닿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