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언니에게 추천을 받아 독서모임 멤버들과 함께 읽었다. 아주 간단하게 책 설명을 하자면, 이 책은 여러 영화에 소개(?)되었던 여성을 향한 범죄에 대해 이수정 교수님과 이다혜님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하는 책이다. 에세이나 소설 등과는 다르게 나누었던 대화 그대로를 옮겨 놓았기 때문에 두 분이 하는 대화를 생생하게 듣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수정 교수님은 <그것이 알고싶다>에 자주 출연하시기 때문에 친숙한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더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수월했다.
한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었던, 혹은 인상 깊었던 구절을 쭉 나열하는 코너가 독서모임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의 그 코너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의 구절이 적혀 있었고, 특히 내 지분이 아주 컸다. 그동안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기만 했던 것들을 이수정 교수님과 이다혜님이 직접 영화에 빗대어 설명해주는 것을 읽으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도 여성으로서 여성을 향한 다양한 범죄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이수정 교수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공부해오셨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연구해오셨다는 것을 알고나니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 '가스등'을 다룬 가장 첫 번째 파트이다. 최근 몇 년동안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인 '가스라이팅'이 어떤 것을 가리키고 어느 상황에서 쓰이는 것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으나 단어의 어원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단어의 어원이 이 영화라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흥미롭고 씁쓸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스라이팅의 의미는, A라는 사람이 아주 교묘하게, 아주 천천히 B라는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여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B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주 교묘하게, 아주 천천히'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B가 자신이 A에게 조종당하고 있고, 자신의 생각은 지워졌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교묘함이다. '가스등'이라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어찌저찌 집에서만 거의 생활하도록 하고, 여자 주인공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여자 주인공의 생각까지 교묘하게 지배한다.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여자 주인공을 몰아 세우고, 자신이 없으면 여자 주인공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밤마다 무언가를 하는데, 그 행동이 집의 가스등을 아주 조금씩 어둡게 만들었고, 그를 알아챈 여자 주인공이 가스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며 더욱 몰아세운다. 영화의 결말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으로 남자 주인공에게서 벗어나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되찾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가스등이 곧 최근 쓰이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셈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정신이 지배당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게 틀리고 그 누군가가 맞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두 분은 영화 '가스등'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성을 향한 범죄에 대해 설명해주시기 때문에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순식간에 읽었다. 중간에 우리나라의 법과 미국의 법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부분도 있는데, 가정 폭력이나 가정 내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피해자 쉼터로 가는 것과 같이 피해자를 이동시켜 분리하는 제도인데 미국은 가해자가 쫓겨난다고 한다. 한국의 법이 그렇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미국의 법이 그렇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두 나라를 비교 설명하는 것을 들으니 아무래도 조금 씁쓸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책을 발간하는 글쓴이들이 있는 한, 한국도 계속해서 더 나은 나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면서 '느낌'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 직접 전문가들의 입에서, 생각에서 정리되어 나오고 그것을 다시 내가 읽는다는 것은 아주 신기한 일이다. 흥미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짜릿한 감정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씁쓸하고 슬프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지배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문가의 말로 표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신기하거나 짜릿하지 않고 그저 슬펐다.
영화 속의 꺼질 듯 말 듯한 가스등의 조도를 통해 여성의 취약한 정체감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합니다. 다락방에서 물건을 뒤지기 위해 가스를 켜는 행위는 앤턴이 하는데, 가스가 줄어들어 불이 깜빡거리는 탓에 불안을 느끼는 건 폴라입니다.
그런데 치사는 살인보다 그 수가 훨씬 많습니다. 상해 치사, 폭행 치사, 강간 치사, 과실 치사까지 그 수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부부를 입력하는 항목이 없다 보니 폭행으로 아내를 죽여도 그것이 만약 치사 사건으로 처리되면 추적이 불가능해집니다. 한국에서 한 해에 몇 명이 남편에게 맞아 죽는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분리를 시키는 방법 자체입니다. 한국에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해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봐도 때린 사람이 집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외국의 경우에는 대부분 퇴거 명령이라는 것을 내립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을 스토킹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성범죄를 목적으로 여자를 쫓아간다면 단 1회라도 그건 스토킹입니다.
범죄학에는 여성 범죄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악녀 가설’이 있습니다. 보통 피의자가 여자라면 경미한 폭력 범죄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데 여자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여자가 감히 사람을 죽이다니! 하며 남자보다 형량이 훨씬 높아진다는 거죠.
저도 재소자들을 만나 너무나 악질적인 모습을 보면 살의를 느낄 때가 있어요. 분명 나랑 비슷하게 눈코입이 달린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인데 그 경계선을 넘느냐 안 넘느냐의 차이로 짐승이 되기도 합니다.
이 친구는 또 태희는 가슴이 작다, 태희처럼 도도한 여자는 먹어야 네 여자가 된다. 이런 식의 말도 합니다. 여성 비하적인 대화가 남성들끼리의 우정을 돈독하게 만드는 방식이 되는 걸까요? /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합니까. 남자들은 그러면서 우정을 돈독히 하는 반면, 우리는 그런 대화를 비웃으면서 우리의 우정을 돈독히 하잖아요.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한국은 의제 강간 연령이 너무 낮은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토론회에서 변호사 한 분이 혼인 가능 연령은 18세로 해놓고 의제 강간 연령은 12세까지라는 것은,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섹스할 능력은 있지만 혼인은 안 된다는 뜻이냐 지적하셨는데 너무나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또다시 의제 강간 연령입니다.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연령이 대체 몇 살인가 따졌을 때 결코 13세는 아닙니다. 왜 이 어린아이들에게 다른 권리는 주지 않으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섹스의 권리는 허용하느냐는 말입니다.
누가 연쇄 살인을 저지른 후 연쇄 살인법 티를 내고 돌아다니겠어요. 그러면 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무려 삼십 오 년 동안 못 잡았겠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성범죄자도 마찬가지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전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마다 제가 어떻게 별일 없이 자라 성인이 되어서 살고 있는지,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한국 영화 ‘브이아이피’의 출연진 소개에는 지은서, 윤정원, 나영, 이준희, 선우, 장민주, 조은빛, 윤하, 조현경 배우가 모두 같은 역할을 소화한 것으로 나온다. 그것은 바로 ‘여자 시체 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