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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책] 양들의 침묵
  • 토머스 해리스
  • 12,000원 (600)
  • 2019-09-11
  • : 176

양들의 침묵은 워낙 유명한 책이라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으나, 사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내용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했다. 한니발이라는 캐릭터의 이름도 들어는 보았으나 한니발이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인물인지도 알지 못했다. 독서모임에서 한 모임원이 이 책을 읽기를 희망했고, 제목만 익히 들어보았던 이 책을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책은 클라리스 스탈링이라는 주인공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FBI 요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연수생인데, 우연(하지만 그리 우연하지는 않은)한 기회로 FBI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잭 크로포드라는 상사와 함께 연쇄 살인마를 찾아 나가는 내용이다. 클라리스는 처음에도 어른스러웠지만 책의 끝으로 갈수록 그 어른스러움에 더해 FBI 요원으로서의 소양도 점점 갖추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클라리스는 정말 호감형 인간이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며, 과묵하면서도 맡은 일을 최대한 수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절대 생색을 내지는 않는, 그런 사람이다. 책에는 클라리스 스탈링의 절친한 친구가 종종 등장하는데, 서로 속깊은 대화를 하는 장면이나 시시콜콜하게 노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지만서도 왜 친구가 클라리스를 그렇게도 아끼고 소중하게 대하는 지를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세 명이다(극 중 범인은 개인적으로 뒤에 나열된 세 명과 비중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리 깊게 다뤄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클라리스 스탈링, 잭 크로포드, 한니발 렉터. 셋의 관계성과 각자의 이야기만으로 750페이지가 넘는 스토리를 단 하나의 페이지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간 작가의 실력에 감탄했다. 잭 크로포드와 한니발 렉터간의 관계는 그리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클라리스 스탈링과 잭 크로포드, 클라리스 스탈링과 한니발 렉터와의 관계는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힘든 사이코패스인 한니발 렉터가 다른 사람은 모두 차치하고 클라리스 스탈링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설정이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했다. 내가 놓친 것인지 묘사가 안되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니발이 클라리스에게 관심을 갖는 뚜렷한 이유를 책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들의 어떤 한 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은 단연 그 명성에 알맞게 흡입력이 엄청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클라리스의 관점에서 책이 진행되지만 중간중간 제삼자의 관점에서도 내용이 진행되는데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고 오히려 더 이해가 잘 될 정도로 스토리의 짜임이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단연 범인과 클라리스가 마주하는 장면이다. 마치 내가 영화나 연극을 보고 있는 것처럼 그 장면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어두운 상황에서 숨막히게 이어지는 전개는 나를 온전히 그 책으로 집중시켰고, 뻔한 클리셰라고 말할 수 있는 클라리스의 승리는 나에겐 절대 뻔하지 않은 아주 소중하고 값진 결말이었다.

양들의 침묵에서 비교적 비중있게 다뤄진 인물 중 한 명인 한니발 렉터에 관한 책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시리즈 <한니발>이다. 아직은 독서모임의 책을 읽는 데 집중하느라 다른 책을 읽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워 시도를 해보지는 못하겠지만 책을 읽는 습관을 더 들인 후에 <한니발>이라는 책도 반드시 읽어보고 싶다. 한니발 렉터의 심리를 더 깊고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의 검지 끝이 렉터의 검지에 닿은 순간, 그의 두 눈에서 탁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고마워, 클라리스." "고맙습니다, 렉터 박사님." 그는 조롱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얀 감방 안에 서서 댄서처럼 유연하게 몸을 굽힌 채 깍지 낀 두 손을 앞으로 뻗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렉터 박사는 스탈링의 머릿 속에 그 모습으로 남았다.
답이 ‘예‘이든 ‘아니오‘든 난 놀라지 않을 거야. 당분간 양들은 울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클라리스, 당신이 보게 될 지하 감옥은 이게 마지막이 아니야. 앞으로 수 차례 보게 될 것이고 당신이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양들은 한동안 축복처럼 침묵하겠지. 양들의 울음소리는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고, 그 울음은 아마 영원히 멈추지 않을 거야. 당신을 만나러 갈 계획은 없어, 클라리스. 당신이 살아 있는 세상이 내게는 훨씬 흥미로우니까. 당신도 내게 그런 예의를 차려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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