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read with me
아가미
땅콩바구니  2020/09/01 10:34
  • [전자책] 아가미
  • 구병모
  • 14,800원 (740)
  • 2019-05-27
  • : 452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북리더기로 이 책을 읽어서 책 표지는 구매를 할 때 말고는 볼 일이 없어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기록글을 쓰려고 보니 책 표지에 그려진 것은 비늘로 덮인 곤의 어깨, 등이었다. 나에게 생선의 비늘은 그리 아름다운 색을 가진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강하의 어머니가 곤의 등을 보고 자신이 평소에 그렇게나 그리던 환각의 무엇과 연결지을 수 있었는지 이해는 잘 되지 않는다. 그냥 비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운 색과 빛을 가진 무언가라고만 생각해야지..


책의 소재는 굉장히 신선했다. 죽다 살아난 아이의 몸에 아가미가 발견되고, 성장할수록 진짜 생선처럼 몸이 비늘로 덮이기까지 하다니.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책에서 받는 신선함은 그게 끝이었고.. 솔직히 전체적인 책의 느낌은 좋지 않다. 일단 책의 문체가 (간결한 문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장황하고 미사여구로 가득해 불필요한 부분이 많아 보였다. 아가미가 열리는 것을 왜 마가린의 뚜껑이 열리는 것과 비교했을까.. 그럼 원래는 아가미가 열리는 것만 상상하면 되는데 마가린의 뚜껑이 열리는 것까지 상상해야하니 머리가 너무 바빴다. 평소라면 자연스레, 어떤 노력도 없이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내가 의식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해서 더 피곤했다(물론 머리 바쁘게 읽는 책도 의미가 있지만 나는 물 흐르듯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렇게 어둡고 차가운 내용을 굳이 또 책으로 읽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현실에도 더럽고 힘든 일이 너무나도 많은데 책에서까지 누군가를 물어 뜯고, (초반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어떠한 사랑도 느낄 수 없는 내용을 읽는게 조금 고단스러웠다.


하지만 위의 느낌은 책이 후반부로 이어질수록 점점 작아졌다. 후반부에는 앞에서 그토록 곤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괴롭힘 말고는 하는 것이 없어 보였던 강하가 곤에 대해 얼마나 극진한 정성을 쏟고 있었고, 곤을 위해 자신이 위험에 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내용이 담겨있다. 물론 그런 내용이 앞의 불쾌한 느낌을 모두 지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책 전체가 불쾌한 것은 아니니.. 그나마 괜찮았다. 어쨌든 강하가 가진 곤에 대한 감정은 애증? 애가 아주 크지만 증도 그만큼 큰 느낌? 증오는 왜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새로 굴러들어온 어린 아이가 아니꼽게 보였을까? 아니면 곤이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을까? 애초에 부모 없이 자라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까(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멀쩡히 잘 키워주셨으니..)? 잘 모르겠다. 애초에 그럼 할아버지가 다른데 보내자고 했을 때 보내던가.. 그게 싫었으면 적어도 평범한 아이만큼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내버려두던가 하지. 


책의 진행 방식은 새로웠다. 이북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개글이나 작가의 말 같은 부분은 책에서 찾을 수 없었고, 단지 소설의 내용만 담겨있었는데, 그게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는 처음 있는 일이라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목차도 없었는데, 제목이나 구분하는 기호 없이 내용이 나누어져 시간적/공간적 배경과 화자가 준비할 틈 없이 바뀌었다. 내용은 서로 아주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저 새로운 느낌의 책이었다.

그녀는 내려다본 아이의 잠든 옆모습이 예뻐 보여서 적어도 이 정도쯤은 되는 고급품으로 덮어줘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단 말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강하에게 자신의 상태와 정신세계를 이해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까지 이해시키려면 자신이 언제부터 약을 해왔고 어떤 환상들을 보는지,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극적이며 깨고 나면 안타까운지,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상쇄할 수 있는 현실의 아름다움에 이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설명해야 했는데, 약 기운이 다 떨어지지 않은 지금은 그런 논리적인 일 자체가 불가능했고 구차하며 귀찮았다.- P177
나는 강하가 이내촌에 살았을 적에 거기 주민들이 정서적으로 얼마만큼 단결되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해요. 그런데도 어떤 사회심리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이 한거예요. 그래서 나는 얘기를 듣는 동안 생각하기를, 당신을 무사히 떠나보내기 위한 어떤… 에너지의 흐름 같은 게 있지 않았겠나 싶었죠. 이심전심? 호수를 옆에 끼고 살아온 사람들. 물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모든 물질의 응집력은 수분을 전제로 하잖아요.- P207
한편 강하로 말할 것 같으면, 조금 아까 당신이 그랬죠, 당신 손이 먼저 닿은 곳은 강하가 잘 안 만지려고 했다면서요. 컵 한 개조차 따로 쓸 만큼 당신을 벌레 보듯 했다고. 강하는 별로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변명처럼 말했지만, 습관적으로 그랬던게 그날의 일에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 P208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