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킨들 언리미티드 구독 신청을 해버려서 (요즘 정말 돈을 공중에 흩뿌리며 살고 있다) 뭐라도 좀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 든 책인데 뜻밖에 흥미진진함;;; 굉장히 신선한 구성의 스페인어 학습 교재다. 단지 스페인어 학습 뿐만이 아닌 외국어 학습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인사이트가 담겨있다. 예컨데 스페인어의 기초적인 특징을 설명하며 시작하는 다른 학습 교재들과는 달리, 이 책의 1강 <Find Your Voice>는 상당히 흥미로운 선언으로 시작한다. ˝진정한 스페인어 화자가 되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영어 화자로서의 퍼스널리티를 놓아버리고 스페인어 화자로서의 퍼스널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약간씩 달라진다는 ( https://1boon.kakao.com/ttimes/ttimes_1703141849 ) 사실을 역이용하여 효율적인 학습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얼마 읽지 못햇으므로 책에 대한 자세한 후기를 남기는 것은 미래로 넘기기로 하고, 사실은 이 책을 핑계로 외국어 학습에 대해 수다를 좀 떨고 싶어졌다.
나는 외국어 학습을 좋아한다. 스페인어도-손을 놓은지 정말 오래되긴 했지만-예전에 흥미를 느껴 취미로 혼자 조금씩 공부했었던 것이다. 자격증 습득과 같은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전공이나 진로와 관련된 일도 아니었으므로 ˝그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게?˝ 같은 질문을 꽤 받았다.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의 시대에 외국어 학습만큼 무용한 취미도 없긴 하다. 내가 쌓은 얕은 지식으로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란 ˝화장실이 어디 있어요?˝ 정도의 아주 제한적인 문장들이 전부인데, 그 정도는 이미 AI가 무척이나 능숙하게 통번역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런 질문 뒤에는 <모든 학습엔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목표가 있을 것이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슬프게도 그런 목표지향적인 성격을 타고나지 못한 나같은 인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밖에. 내가 외국어 학습을 좋아하는 이유는, 굳이 말하자면 ‘이유 없음‘에 가깝다. 나는 외국어로 된 텍스트를 읽는 게 재밌다. 한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국어의 낯선 발성과 발음도 재밌고, 문법의 차이에서 보이는 각 언어마다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재밌다. 이것을 좀 더 세련된 말로 표현하기 위해 이 책 초반에 인용된 플로라 루이스와 아이리스 머독의 글을 재인용 할 수도 있겠다. ˝Learnin another language is not only learning different words for the same things, but learning another way to think about things.˝ (Flora Lewis) ˝I enjoy translating; it‘s like opening your mouth and hearing someone else‘s voice emerge.˝ (Iris Murdoch) 새로운 언어를 학습하는 일은 낯선 세계에 스스로를 열어젖히는 일이고, 이 책의 저자가 첫 장에서 짚어냈듯 그건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오래된 자아를 두고서 새로운 정체성을 빚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하여간에...운동하는 모두가 김민경이 될 수 없듯 외국어를 공부하는 모두가 나보코프가 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한창 재미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 그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게˝ 따위의 말로 초치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나는 지루한데다가 무례하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하고 자기소개하는 꼴이니까.
추가: 호기로운 마음으로 쭉 읽다가 짜게 식어서 반납함...스토리를 통한 연상암기법으로 스페인어를 설명하는데 정말 엄청난 시간낭비🙄3분이면 외울 내용을 3강에 걸쳐서 설명한다. (미국인들아 이정도는 그냥 좀 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