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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g of flanders



탑골공원. 가을이 당도해 있었다.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이따금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은행나무들이 순금빛 해의 비늘들을 눈부시게 털어내고 있었다. 플라타나스 이파리들은 이미 녹물이 들어 오그라든 채로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노인들이 기울어지는 시간속을 걸어와 가을 유배자들처럼 쓸쓸히 공원을 배회하고 있었다. 며칠간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늘이 높아져 있었다. 높아진 하늘 변두리로 새털구름 몇 자락도 가벼이 떠 있었다
 4년전 영면한 이외수의 <벽오금학도> 첫 부분이다. 어떤 작가가 가을 풍경을 묘사했을 때 <벽오금학도>의 이 대목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묘사한 글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이 대목을 천천히 읽으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탑골공원의 가을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가을이 당도해 있었다” 라는 첫 문장이 나는 좋았다. 평이하게 가을이 왔다가 아니라 당도했다는 서술어에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 저절로 오는 가을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어서 탑골공원으로 아무도 모르게 오고 있었던 가을이 어느날 도둑처럼 홀연히 와있는 장면.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 <실락원>에도 이와 결이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일년.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을은 이미 한여름 속에 와 있다


 어느날 문득 예고 없이 당도해 있는 가을이지만 이미 한여름 가장 뜨겁고 울창할 때 서늘한 기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다 그럴지도 모른다. 가장 좋고 아름다울 때는 그렇지 않을 때를 전제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가을이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겨울의 냉기는 서서히 짙어지겠지만 겨울이 당도하기 전까진 가을이다. 계절이 끝남을 알기에 단 하루의 가을도 소흘히 보낼 수 없다.

가을이 오면 항상 떠오르는 이 대목이 실린 소설 <벽오금학도>를 구입하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1992년 10월 정도일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연도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는데 책을 다시 꺼내 인쇄정보를 보니까 1992년 5월 초판이었다. 경북 영천의 S서점은 나의 단골 책방이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니 서점 주인이 매대에 진열해놓은 책이 곧 베스트셀러였고 따끈한 신간이었다. 그날 <벽오금학도>가 서점 어디쯤에 놓여 팔리고 있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특정할 수 있다. 서점 맨 안쪽에 왼쪽 매대였다. 주로 신간 소설이 놓이는 자리였다.


 이 책은 표지 디자인부터 너무 잘 되어 있었다. 강렬한 원색으로 그려진 산 위에 새빨간 해가 떠 있는 그림인데 지금 봐도 참 예쁘고 신비롭다. 책날개 안쪽에는 “때로는 신화보다 현실이 몇 배나 더 신비스러울 경우가 있다”라는 문구가 세로로 박혀 있었다. 이 책을 지금 당장 사라고 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 오는 듯 했다.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4천 얼마를 내고 <벽오금학도> 들고 나서는 그때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던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 부러운게 없었다. 서점을 나와 다리를 건너 버스 정류장쪽으로 걸을 때 내가 한가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멈춰 섰다. 버스 차비가 없었다. 차비까지 싹 털어 책을 샀기 때문이다. 지금 기억으로도 그때의 갈등이 선명하다. 책값을 지불할 때 차비가 없다는 걸 분명히 알았지만 책 구매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순간순간 대단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성정이 있었다. 책에 환장한 바보였던 것일까? 차비가 없다면 집까지 50리 길인데 어쩌자고 책을 샀단 말인가? 완행버스 이외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은 없던 시절이다. 집까지 걸어간다면 5시간 이상이 소요될 거리다. 당장 돌아가서 책을 환불해야 될 처지였는데 그러지 않았다. 내 자신에게 황당해하면서도 환불하러 가지 않았던 내 기괴한 고집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의가 없을 뿐이다. 그때 책을 사지 못하면 다시는 그 책을 사지 못할 것 같은 터무니 없는 미신이 나를 지배했던 모양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고 차비를 빌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 다리 반대편에서 몰몬교 선교사들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미국에서 온 브래드베리 일행이었다. 그들은 항상 두 명씩 짝을 지어 까만 양복을 갖춰 입고 한 손에는 몰몬 성경을 들고 다니며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던 사람들이었다. 지난번에도 다리 위에서 브레드베리와 짧은 영어회화를 연습하고 몰몬경 한 권을 얻었던 터였다. 책이라면 닥치는대로 구해 읽던 나였으니 몰몬 성경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성서도 내겐 그저 읽을거리중에 하나였지만 미안하게도 몰몬경은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진 못했다. have no money, going home, please give me... 개떡같은 영어로 브레드베리한테 처지를 대충 설명하니 찰떡같이 알아듣고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내 주었다. 버스비를 하고도 남을 돈.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꼭 갚겠노라고 약속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다시는 브레드베리를 볼 수 없었다. 아마 선교 사역 기간이 만료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던 것이겠지. 여기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고 했던 그의 짧은 말이 기억났다. 그 날 이후 브레드베리 일행 대신 또 다른 양복쟁이 둘이 다리를 건너 다니며 사람들한테 말을 거는 모습은 여전했다.


  미국인 선교사가 1992년 10월 차비까지 털어 기어코 책을 사버린 고집 쎈 남학생에게 차비를 빌려줬다. 빌린 돈으로 버스를 타고 가던 어느 가을날 오후 국도옆 노란 은행잎들이 반짝이는 풍경은 얼마나 눈부셨던가. 버스에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책의 첫 문장은 “가을이 당도해 있었다” 였다. 지금도 가을이 당도하면 차비를 빌려줘서 고마웠던 미국인 선교사 브레드베리가 떠오르는데 그가 빌려주었던 것은 그저 돈 몇 푼 뿐이었을까? 나는 그가 빌려준 돈 덕분에 책에 대한 내 열정이나 낭만이 좀 터무니 없긴 해도 여전히 나를 지탱하고 살게하는 생존 원리임을 자처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에 좀 사치를 부려도 괜찮구나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해야하나.


 그 날 이후로도 책은 몰몬교 선교사 브레드베리처럼 내 인생의 거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구세주였고 희망이었다. 앎에 대한 갈증의 해결도 좋았지만 책 그 자체에 대한 추앙은 내가 제일 자신있게 즐길 수 있는 낭만이었다. 차비까지 털어 책을 안고 나오던 눈부신 그 가을날에 느끼던 설렘과 희망, 환희를 누구에게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던 내가 그토록 책에서 위안을 느낀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책을 펼치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가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솔직하게 하는 이야기들 때문이었으리라. 특히 이외수의 에세이들이 그랬다. 외롭고 적적한 깊은 가을밤, 쌀자루와 늙은 호박이 쌓여있던 시골방에 홀로 앉아 침잠하면 귀뚜라미 울음조차 그치고 마침내 들려오는 형광등 타들어가는 지~이잉 하는 소리. 그때 내가 읽은 글들에서 발견한 보석같이 환하게 빛나던 문장들. 젊은날의 이외수 그도 나처럼 홀로 밤새우면서 형광등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지독히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의 글들은 외로움, 가난, 굶주림, 추위, 그리움, 슬픔, 비애로 가득차 있었지만 어쩐지 그 말들이 너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구나 하고 걸어오는 반가운 말걸기였다. 요즘 말로 하면 선톡이다.


 나는 그 시절에 읽었던 책들에서 얻은 위안과 기쁨, 설렘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손 가는대로 책을 사 모으거나 그 때 읽던 책들을 다시 뒤적거리는 이유는 그때의 그 환한 설렘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비가역적인 소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대하는 내 태도는 그때 차비까지 털어내던 대책없고 순종적인 맹목적 추앙과 달라진 건 크게 없다. 지금은 책보다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책만큼 나를 오랫동안 가슴 저리게 하는 존재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책이라면 설렌다. 도서관에 갈 때도 그렇고 서점에 갈 때도 그렇다. 마음에 담아두고 좋아하는 사람을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칠 때처럼 늘 설레지만 희한하게도 식상하거나 질리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연애다. 사람은 이렇게 오래전 자그만 행복감을 평생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 나선다. 올해 가을에는 어떤 책이 또 나를 설레게 할지 밤마다 스탠드 조명을 밝히고 책상 앞에 앉아본다













이외수
<하악하악>,<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청춘불패>,<아불류 시불류>,<글쓰기의 공중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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