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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g of flanders
책도둑
파트라슈  2026/01/21 09:12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 청소년기를 회상해보면 나는 책을 많이 읽었고 그 경험은 무척 행복했다. 한글을 깨우친 시절부터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인쇄된 것은 무엇이든 읽었다. 읽기는 내 유일한 오락거리였고 즐거움이었다. 지독한 활자 중독자였고 독서광이었다. 읽지 못하는 글이 있으면 너무 아쉬웠다. 집에 복숭아 봉지 씌우기용 종이봉투가 널려 있었는데 외국에서 수입해 온 종이인지 온통 알파벳으로 인쇄되어 읽을 수가 없음에 크게 한탄했다. 글 읽기는 나에게 일종의 정언명령 같은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책을 읽지만 그 시절의 독서 경험 만큼 즐겁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다면 내 어린 시절은 책이 귀한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읽을 책 한 권 생기면 그게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다. 행복은 희소성과 정비례하지 않겠지만 내 어린 시절, 책은 흔하지 않았기에 그때의 책 한 권은 지금 수십, 수 백권의 책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도서관도 없었고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나는 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집에 읽을 책이 없다는 건 무척 슬픈 일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재미가 시들해졌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이면 내복만 입은 채 종일 방에 틀어박혀 누나들이 보던 소설책을 읽어 치웠다. 그 때 읽었던 책은 <마도의 향불>, <국보와 괴도>, <붉은 전갈의 공포>같은 그로테스크한 성인 추리 소설들이었지만 그것까지 정말 맛있게 읽어 버렸고 마침내 집에 읽을 책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날 나는 크게 절망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읽을 책이 없어 불안하게 방바닥을 뒹굴다가 문득 어떻게 해서든 읽을 책을 구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구해 올까? 책을 구해 올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중학교 도서실이었다. 당시 학교 도서실은 건물 복도 맨 끝 북쪽 구석에 있었고 도서실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생물표본이 포르말린 용액으로 가득찬 병안에 괴기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아 춥고 어둡고 무서운 곳이어서 학교 아이들은 도서실에 출입하는 걸 꺼려했고 거기에 있는 책들을 학생들이 읽거나 대출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거기서 과학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책장마다 유리로 된 문이 주먹 만한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고 책을 대출해주는 직원도 없었고 그 누구도 그 책들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나 같은 책벌레한테 아무도 읽지 않는 그 책들이 눈에 밟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무서운 그 도서실에 혼자 출입하는 용기를 내기도 어려워서 아쉽게 입맛만 다시면서 결국 그 책들을 포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읽을 책을 구해 오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서자 학교 도서실에 포기한 책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고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내가 좀 옮겨와서 읽는 게 뭐 그리 나쁠 것이냐 하는 합리화로 마음을 다잡았다. 쌀 창고에 있던 40킬로짜리 정부미 쌀포대기 하나를 챙기고 밤 12시를 넘겨 집을 몰래 나섰다. 책을 훔치러 가는 길, 12월 말 동지가 지나고 시리고 시린 겨울밤이었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고 철길로 올라섰다. 혹시나 누군가 눈에 띌 것 같아 일반 국도로 걸어가지 않고 철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학교까지는 십리가 넘는 길이었다. 그 야심한 밤에 철길을 걸어가는 남학생 한 명의 모습 누가 보더라도 이상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내 발걸음은 거침 없었다. 책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학교에 도착하고 건물 밖에서 2층 도서실로 올라가는 캐노피로 올라섰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도서실 창문은 쉽게 열렸고 내부로 들어가서 자물쇠로 잠긴 책장 문도 약간 힘을 줘서 들어올리니 쉽게 개방되었다. 쌀자루에 책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평소에 읽고 싶던 책 위치를 봐두었던 덕에 망설임 없이 책을 골라냈다. 혼자서 들고 옮길 정도의 양만 담고 다시 10리 철길을 걸어왔다. 훔친 책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새벽의 철길을 걸어오던 그 때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만이 내 절도행각을 무심히 내려다보는 듯했다. 외롭고 지독히 추웠지만 곧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10리길도 즐거웠다. 다행이 그날 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점심때까지 늦잠을 즐기고 훔쳐 온 책들을 즉시 읽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업어온 책들 대부분은 중국고전들과 문고본책이었다. 논어, 맹자, 서경, 사기열전, 한비자. 묵자, 순자, 채근담, 법구경등등.. 방학내내 그 책들을 읽어나갔다. 법구경을 읽을 때는 붓다의 그 서늘한 가르침에 몸서리쳤다. 책을 그것도 공공재인 학교의 책을 훔친 내 도둑질에 대해서 붓다와 공자, 한비는 인쇄된 활자로 무섭게 나를 책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죄책감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즐겁게 읽을 책이 넘치도록 생겼으니까 말이다. 


 방학 내내 그 책들은 읽고 있으니 개학날은 금방 다가왔다. 개학이 되고 학교에 갔더니 누군가 학교 도서실을 털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책이 없어진 사실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을 그래도 사람들은 믿는 시절이었던 것일까? 책 절도 사건은 조용히 잊혀져 갔다. 대신 도서실 책장에는 지난번보다 더 견고한 자물쇠가 달렸고 창문과 출입문 잠금장치가 더 강력해졌다.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나는 도서실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벌써 4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낭만적 말이 통용되는 시절이었지만 엄연히 절도 행위였고 주거침입이었으니 부끄럽고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책을 한 자루 짊어지고 겨울밤 가슴 설레며 달려왔던 소년은 이제 50살이 지나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학에 입학해서 제대로 된 도서관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늘 책에 굶주려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끊임없이 책을 찾았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배웠고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인가? 나에게 책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나에게 책이란 뭔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때처럼 책을 어떻게든 구해와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책을 읽어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책 읽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사회적 성공(돈, 높은 지위, 좋은 직업, 훌륭한 인품등)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그저 책 속에서 살아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년 시절 내 불안하고 외롭고 슬픈 마음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위로 해주고 말을 걸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책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책은 그냥 내 삶이었다. 내 인생에서 책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황량했을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나는 행복했다.


 책이 너무 좋아 한순간 저지른 실수였지만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수십 년간 매월 일정 금액 이상을 책 구입에 지출했다. 책 모으기 강박적 불안을 오랫동안 앓고 있는 것이지 싶다. 집에 책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증이라고 해야겠다. 한겨울 밤 책을 훔치러 철길 20리를 걸었던 그 시절의 나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결코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 시절 나는 책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훔친 책들을 읽으며 기쁘고 행복했지만 살아오는 동안 늘 모교에 내가 갚아야 할 빚은 오래된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비록 내가 훔친 책들이 자물쇠에 굳게 잠겨서 아무도 읽지 못할 책이라지만 나 혼자가 아닌 학교 급우들과 후배들이 그 책들을 읽을 잠재력이나 기회는 여전히 있었을 것이다. 나는 책 그 자체뿐만 아니라 책이 가진 그 기회까지 뺏어온 것이다. 그 부분은 정말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변에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진 책들을 주저 없이 내 주었다.

 

 내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학교 도서실의 큰 도움을 얻었지만 어떻게든 학교에 진 빚을 다시갚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모은 책들을 정리한다면 모교에 기증을 하면 어떨까? 어느날 고향에 갔는데 모교 앞에는 학생들이 없어서 폐교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또 35년 전 새벽에 걸었던 그 철길은 레일이 모두 걷어지고 더는 열차가 다니지 않았다. 책이 있던 2층 도서실은 그대로였지만 학생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 책을 읽을 아이들이 이제는 없구나.


 이제 책은 너무나 흔한 세상이 되었다. 도시에는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이 들어서 있고 조금만 움직이면 큰 도서관이 있어 책은 전혀 귀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책을 훔쳐 읽던 그때의 나처럼 여전히 책에 목마른 아이들이 있을 것만 같다. 그 시절 나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밀린 숙제를 마치려고 모교 관할 지자체에 지정기탁 신청을 했다. 좀 어려운 학생들에게 책값을 보태고 싶다고 적었다. 이왕이면 학교독서대회에서 입상한 아이들이면 좋겠다고.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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