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자식들에게 보낸 서한 중 고르고 고른 고갱이가 이정도란다. 그 아버지가 마침 귀양가서 천리 먼 곳에 계셨기 망정이지 모시고 있는 처지에 이렇게 매사 감놔라 배놔라 했으면 그 자식들이 가출을 하거나 출가를 했을 듯.
중년 한남들의 행태를 시쳇말로 "Latte is horse~"라고 하더니만, 그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듯 하다. 하긴 뭐 세상살이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다산의 이 서한집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꼰대들 훈장질은 변함이 없는 것이겠다.
그렇지 뭐. 피라미드를 쌓을 때나 만리장성을 놓을 때나 기성세대는 "요새 애들은 싸가지가 없어"라고 하는 거고, 청춘들은 "라떼는 말이여~"라며 윗세대를 디스하는 거고. '군바리'들의 영원한 테마가 있잖은가? 요즘 쫄따구들 빠져가지고...
그런데 말이다. 아니 이럴 수가. 책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스며 나오고, 고개를 끄덕이더라는 말이지. 어랏, 이런 줴길. 내가 그만 기성세대가 되었구나. 이 꼰대의 훈장질이 남의 이야기같이 들리지 않는 구절이 있더란 말이다. 아아, 세월이여. 이럴 수가.
자유분방보다도 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한다거나(38~39쪽) 술을 자제하라거나(135쪽 이하) 하는 이야기들은 물론이고, 그 외에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더라. 특히 잘 나갈 때 인심과 못나갈 때 인심의 차이라든가 자기관리의 엄정함이라든가 하는 부분은 심하게 동의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이 서한들을 보니 다산은 자식들에게 안타까움을 많이 가졌을지언정 자식들을 인정하지는 않은 듯하다. 닥달은 있는데 칭찬은 인색하고. 편저자가 그런 글들만 모아놨는지는 모르겠으되, 엄부의 자세는 훌륭할지 몰라도 내가 그 자식이었다면 아마 삐딱해지지 않았을까.
스스로가 너무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또는 자식들을 한참 뒷바라지 해야 할 때 귀양살이를 떠나 그 소임을 못했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다산은 너무나 엄격한 지도지침을 전달했던 듯 하다. 아버지의 기대와 요청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고 자책했을 그 자식들이 왠지 가엾어 지기도 하고.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편저자의 해설에도 참조할 이야기들이 많다. 시대가 시대라서 그런지 몰라도, 경륜이 있는 이야기마저 꼰대들 훈장질로 치부되기 십상인 시절이다. 하지만 그런 시류가 적절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른다운 어른이 없으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경륜이 녹아 있는 가르침이 아쉽다. 나는 혹여 누군가에게 꼰대짓을 하고 있지 않나하는 경계심과 아울러, 꼭 해야 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입닥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