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대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꽤나 견고하다. '386세대'론에서부터 시작해 X세대, Y세대, 밀레니얼 세대 등 연대(年代)나 경험을 축으로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나, 혹은 '000세대', 'XXX세대" 등 어떤 기준점이 될만한 인물을 내세우는 세대론, '88만원세대'나 '3포세대, N포세대'처럼 경제적 기준을 근거로 분류한 세대론 등 이런 세대론 저런 세대론을 봐도, 난 도무지 그게 특별히 세대의 특징으로 분류될만한 어떤 근거가 실질적인 있어서 그렇게 분류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가장 황당했던 건, 빈번하게 고소고발을 남발하면서 동시에 빈번하게 피고소피고발되면서 상대방의 ATM기 노릇을 하다가 최근 실형까지 선고받은 어떤 변변찮은 자가 10여년 전쯤 내세우던 '실크(로드)세대론'이었다. 386을 극복하고 세계적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새로운 세댄가 뭔가가 그 핵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거 관련된 조선일보 기사나 그 변변찮던 자의 글들을 읽다가 몇 번을 뿜었는지 모르겠다. "그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MB버전)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목적을 위해 세대 간 갈등구조를 만들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변변찮은 자 주변의 몇몇과 이걸 띄워주려했던 조선일보 같은 수구언론을 제외하고 오늘날 '실크(로드)세대론'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세대론에 대해 경계심을 잔뜩 돋우는 이유는 그 세대론이 지향하는 방향성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세대가 실존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그러한 세대를 호명하면서 일군의 집단으로 묶어 세우려는 것에는 반드시 납득할 수 없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모든 세대론은 그러한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나마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줬던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역시, 실질적으로 이 사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88만원 세대'로 분류될 사람들이 아니라 '88원 계급'의 문제였다. 이것을 세대론으로 치환하면서 정작 계급의 문제는 희석되고 계급적 연대의 주체가 되어야 할 앞세대와 뒷세대는 세대의 벽을 두고 대립하는 자뻑에 빠지게 된다. 하물며 '88원 세대'가 이 수준일진데 다른 세대론은 더 말할 의미도 없다.
그러다보니, 이 '90년생이 온다'는 책에 대해서도 일단 삐딱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삐딱한 시점은 책을 다 본 이후에도 교정되지 않았다. 이 책 역시 앞서의 세대론과 다름 없이 90년 이후 출생자들의 특징들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지만 그게 어째 세대의 문제인가? 또는 그 연령대 세대만의 특징인가? 더욱이 이 책이 은근하게 전제하는 '꼰대' 세대와 90년 이후 출생자 세대의 갈등구도는 기존 세대론이 가지고 있는 갈등구조의 변용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현상은 90년 이후 출생자들만의 전형적인 모습인가? 아니면 이제 생물학적인 연령대가 90년대 이전 세대가 공무원 시험을 보기엔 너무 연식이 되었기에 자연도태되었기 때문인가? 혹은 그나마 집이든 어디든 자본을 댈 여력이라도 있거나 정말 본인이 쌔가 빠지게 돈 벌어가면서 아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90년대 이전 생들은 뭔가? 온라인에서 보이는 말줄임이나 은어는 확장의 가능성, 즉 온라인에 접속하기 쉬운 사람들의 범주가 누구냐에 따라 주 사용층이 달라질 수 있는 건데, 이것이 90년 이후 출생자들의 특징일까?
본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보여주기식으로 회사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과 함께 인용된 어떤 사람의 말이다.
"주어진 업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일과 시간엔 담배 피우고 서로 수다 떨고 놀다가,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저녁을 먹고 시작하더라고요."(173쪽)
저자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구태의연한 회사의 행태에 신물난 90년 이후 생들 중 상당수가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범주 내에서 위 인용문에 나오는 행태를 가장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집단이 공무원들이다. 이러저러한 경로로 들여다본 구청 단위 공공기관의 매우 많은 공무원들의 근태는 저 인용문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근무시간에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몇 시간 있다 나타나 연장근무를 달고 나가거나, 도대체 뭘 하는지 어딜 갔는지도 파악이 안 되는데 빈번하게 출장을 달거나 뭐 이런 행태들 만연해 있다.
구태의연하고 '꼰대'들이 판치는 민간회사를 떠나 어려운 시험을 거쳐 공무원이 되는 90년 이후 출생자들은 저러한 공무원 사회의 말도 안 되는 근태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이 일반화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다시 한 번, 내 경험상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새로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저 근태에 아주 잘 적응한다. 아니 마치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기 삶의 일부분이 된다. 이건 세대차이인가, 아닌가?
이처럼 생산자의 입장이 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소비자의 입장에 서더라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거론하고 있는 새로운 소비트랜드나 소비자의 태도는 90년 이후 출생자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나타는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120 다산콜센터의 성장과 활약은 90년 이후 출생자들의 새로운 소비트랜드로 인하여 구축된 것인가?(250-255쪽)
VOC(voice of customer)가 90년 이후 출생자들이 소비주체로 등장한 이후 기존 체제가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기업과 소비자가 교신하는 형태의 소통이 이루어졌지만, 이제 90년 이후 출생자들은 회사와의 공식적 채널을 선호하지 않고 자신의 SNS에 올리거나 커뮤니티에 올리는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임에 따라 기업이 회사 전체 차원의 혁신을 해야만 했다는 거다(312쪽). 그런데 이게 과연 90년 이후 출생자들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지난 20년 간 급속도로 발전한 온라인 시스템의 결과물인가?
물론 어떤 경향이라는 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이든 상품시장이든 시장에서의 경향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측면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소위 '90년생'이라는 세대의 출현으로 인하여 파생한 문제이며 따라서 그 세대를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경향은 기술발전이 조성한 환경과 이 환경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이해관계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거기엔 90년 이후 출생자들이 있을 수도 있고, 드디어 유튜브의 가치를 뼈저리게 확인하고 온갖 가짜뉴스(fake news)를 유튜브로 습득하고 SNS로 실어 나르는 70-80대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며, 그리고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무수한 세대론이 등장하겠지만, 정말로 인정할만한 근거가 제출되지 않는 한 아마도 나는 계속해서 세대론에 대한 색안경을 벗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