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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의 골방
  • 서울의 근현대 음식
  • 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
  • 10,000원 (500)
  • 2014-09-05
  • : 64

흠... 그러고보니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니라 책 핑계로 신세한탄만 한 듯. 하긴 뭐 리뷰라는 게 따로 있겠나. 책의 내용에 대한 정리나 책을 읽다보니 느낀 바를 간략히 적으면 그뿐이지, 무슨 형식을 따지고 깊이를 잴 일은 아닌 듯 싶다. 그건 전문적인 평론가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오늘 점심은 뭘 먹었더라? 아침은? 뭐 돌이켜보면 대충 어떤 음식물을 섭취했는지 기억은 나겠지만, 이렇게 그저 끼니를 때웠다는 정도로 내 몸에 들어가는 것들이 취급되는 건 서글프긴 하다. 음식을 먹을 때,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언제적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본 말인데,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그 말이 상당한 무게로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나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작용하는 하고 있는 먹을 거리에 대해 이렇게 무심한 건 곧 내 몸과 마음에 대해 스스로 무심한 것과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게다가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은 먹거리를 입에 넣도록 만들어준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일 터이다. 입에 넣고 씹기만 하면 되도록 음식을 조리한 사람이나, 그렇게 음식이 될 식재료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그것을 내 집까지 옮겨준 사람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 원천적 재료가 되어준 식물이며 동물에 대한 감사, 그것을 단 한 마디 말로 "잘 먹겠습니다"로 퉁치는 게 적절한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어떤 무엇인가의 생명과 땀과 숨결이 고스란히 내 몸으로 들어와 나를 만드는 것이니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


그건 그렇고, 음식은 또한 시절과 장소를 많이 타는 것이기도 하겠다. 나는 21세기 한국의 서울에서 살고 있다. 태어나기를 조상 대대로 이 땅에서 난 사람들의 뒤를 이었고, 못살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그랬듯이 먹고 살기 위해 몰려든 서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서울 변두리를 헤메고 살아간다. 이 동네 특유의 음식문화는 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입맛을 좌우하게 되었을 것이고, 또 입맛에 맞는 음식물을 섭취하다보니 이 공간에 잘 적응하는 몸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렇게 또 내 몸과 관련을 맺게 된다.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공수되는 각종 식재료와 온갖 도처에서 출발한 각종 요리법이 섞여 있는 국제적 대도시 서울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요리들이 지천에 널려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익숙한 것에 먼저 눈길이 가는 법. "서울의 근현대 음식"은 그래서 좀 쉽게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왜정시대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 동안 서울의 음식문화에 대해 다룬다. 시대의 변천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지금 서울의 음식문화라는 것은 굴곡진 역사 속에서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던 서울의 역사 속에서 세계 각국의 음식문화가 공존하고, 전쟁을 겪으면서 또한 개발독재의 광풍을 겪으면서 전국각처에서 몰려든 온갖 지방의 음식문화가 얼키고설킨 것임을 알게 된다. 하긴 아무리 대를 이은 노포라고 할지라도 앞세대의 입맛과 뒷세대의 입맛이 변함없을 것이라는 가정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겠지만.


서울의 음식문화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몰랐던 사실이 주는 신선한 흥미를 유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산한 그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네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느끼면서 기분이 축축해지기도 한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호텔을 경영했다고 알려진 손탁의 말년이 불우했던 점을 보면 시대에 휩쓸린 개인의 삶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24쪽) 


음식문화 역시도 신구 문물의 충돌과정에서 세대차이를 보이게 되고, 여기서 신세대와 구세대의 알력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오늘날이나 예나 다를 바가 없음을 보며 피식하게 된다.(71쪽) 하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게 모든 구세대의 불만이려니와. 


음식이 나오는 과정이나 음식의 상태나 그걸 먹는 사람들의 행태가 '설렁설렁'해서 설렁탕일 수  있다는 말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93쪽) 선농단이니 몽고의 말에서 나온 이름이니 하는 것들을 들을 때에는 갖다 붙인 결론처럼 여겨져 영 마뜩찮던 설렁탕의 이름이었더랬다. '설렁설렁'해서 설렁탕이라니 이게 얼마나 딱 맞는 이름인가.


추어탕 집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요즘 시쳇말로 잠입취재를 한 어떤 이가 남긴 말이 가슴을 친다. "속담에 '보고 못 먹는 것은 그림속의 떡'이라 하지만 저로 보면 추탕집의 음식물입니다. 아침 다섯 시부터 저녁 열한 시 열두 시까지 제 손으로 뜨고 집는 국과 고기와 과일과 술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나나 제 입으로 들어오는 때를 혹 보셨습니까."(99쪽) 노동자들의 삶은 왜정시대나 지금이나 그렇다. "전국에 내 손으로 지은 집이 몇 채인지 모르는데, 내 집 한 칸이 없다"던, 평생을 노가다판에서 살다 간 아버지의 말도 그렇고. 한 벌에 몇 백을 호가하는 고급 브랜드의 옷을 만들었지만 평생 몸빼작업복이 가장 잘 어울렸던, 평생을 봉제공장 다니던 어머니도 그렇고.


서울배추라고 불리던 재래종 배추로 담근 김장을 먹어본 일이 없는 처지인지라 그 맛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는 입장이지만, 가능하다면 한 번 먹어보고싶기는 하다. (183쪽) 하긴 어릴적에 큰 집에서 김장을 담글 때면 적게는 5백포기에서 많게는 천포기를 담그는데, 절여 쌓아놓은 배추며 무가 코찔찔이 어린애의 눈에는 무슨 성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걸 김장 담가 분가한 집들까지 온 식구들과 나누는데 아무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더랬다. 산골인지라 배추를 마련하려면 집에서 기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딘가서 상당분량을 사와야 했는데, 내 기억에 집에서 기른 배추와 사온 배추는 생김새 자체가 달랐다. 하지만 뭐 그게 재래종이었는지 뭔지는 모르겠다.


책 말미에 다양한 서울의 먹자골목 이야기가 나온다.(220쪽 이하) "종로빈대떡, 신림동 순대, 성북동 칼국수, 마포 돼지갈비, 신당동 떡볶이, 용산 부대찌개, 장충동 족발, 청진동 해장국, 영등포 감자탕, 을지로 평양냉면, 오장동 함흥냉면, 동대문 닭한마리, 신길동 홍어, 을지로 골뱅이, 왕십리 곱창..." 성북동 칼국수 골목만 못가봤구나...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예전 청진동 해장국집 본점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던 한시가 있었는데, 해장국집 찬양하는 내용이었더랬다. 피맛골 다 부서지고 난 후인지 그 전인지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아무튼 언젠가 갔더니 그 편액이 사라지고 없기에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일하는 사람들이 별 걸 다 물어본다는 눈치를 주길래 뻘줌했던 일이 있었더랬다. 아무튼 지금도 청진동 해장국집 가끔 간다만 예전같은 느낌은 못 느끼겠다.


예전 같은 느낌이라... 결국 나도 옛 추억 운운하는 구세대가 되어가나보다. 천지에 새로운 맛들이 넘치는데 이 책을 보면서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다니. 아아...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책 읽다가 이런 느낌 들면 아주 열적다.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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