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책에 대한 반응이 관심을 불러 일으켜 구입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최태섭의 '한국, 남자'가 그런 경우. 소위 '한남'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상황이며,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기실 책의 내용 자체는 새로운 사실을 밝힌 것도 없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남녀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글들.
여전히 의아한 건, 이 책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이는 일군의 무리다. 왜 그럴까? 무엇이 그들을 겨우 이 정도 글에 분노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오히려 최태섭의 전작인 '잉여사회'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잉여사회' 리뷰를 먼저 했어야 하는가... 암튼 그런데, 기실 '한국 남자'에 대해 저리도 날선 반응을 보이는 그 부류가 바로 '잉여사회'에서 이야기된, 이 사회 안에서 잉여, 즉 떨거지가 되어버린 자들의 잉여로움에서 발생한, 잉여 아님을 인정받고자 하는 그런 몸부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한남'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 남자'는 그닥 쓸만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아주 교과서적인 결론으로 끝날 뿐이다. 따라서 오히려 '한남'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답 역시, 최태섭의 전작인 '잉여사회'의 결론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잉여사회'가 제안하던 '새로운 형태의 자유와 욕망'이 뭔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