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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글 남기네요. 12년 만인듯. 아래는 생각 정리한 내용

기원전 49년부터 1년 반 넘게 벌어진 로마의 내전. 갈리아 전쟁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원로원을 등에 업은 상승장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간의 전쟁은 당시 로마 상류 층에게 어느 한쪽 편에 서기를 강요했다. 
군인이자 정치인 브루투스 또한 이 같은 선택의 길에 놓인다. 브루투스는 자신에게 유달리 관대하며, 또 어머니 세르빌리아의 애인인 카이사르의 편에 설 지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하지만 명문가 출신이며 현명했던 세르빌리아는 아들의 안위에 대해 누구보다 냉정하게 판단했다. 세르빌리아는 브루투스에게 자신의 애인이 아닌 폼페이우스의 편에 서라고 잘라 말한다. 폼페이우스는 세르빌리아의 남편이자 브루투스의 아버지인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레피두스 반란’에 가담한 이유로 처형한, 이들 모자의 원수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할 만한 조언이다. 

세르빌리아가 이 같이 조언한 이유에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 로마인 이야기 등에 따르면 “브루투스가 폼페이우스 편에 설 경우, 카이사르가 내전에서 승리하더라도 정치적으로 관대한 카이사르는 브루투스를 용서하고 출세길을 마련해 줄 것이다. 반면 뒤 끝이 심한 폼페이우스는 자신이 내전에서 승리 할 경우 카이사르 편에 선 브루투스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라는 이유로 브루투스가 폼페이우스를 돕게 한다. 결과는 알다시피 폼페이우스가 패하고, 카이사르가 집정관 자리에 오른다. 폼페이우스의 편에 섰던 숙청 대상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품에서 승승장구 한다. 다만  공화주의자인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암살하며 이 들의 인연은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명확하다. 조직이나 정치판에서 관대한 대인배와 뒤끝이 강한 이가 벼랑끝 대치를 이어가며 대립할 경우, 뒤 끝 강한 이의 편에서는 것이 향후 자신의 편이 권력투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정치적 회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뒤끝이 강한 이들은 외부적으로는 공정한척 하지만 내집단들에게는 반대파에 대한 숙청 의지를 강하게 어필하며 사람을 모으고 또 세력을 공고화 한다. ‘게임이론’으로 풀어보면 이점이 훨씬 많은 우월전략에 가까운 용인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 신세계에서 덕(德)은 없고 권력의지만 강한 이중구가, 비교적 덕장으로 분류되는 정청과의 권력투쟁에서 만만찮은 세력을 구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일 테다. 

현 정치에서도 이 같은 ‘뒤끝 정치’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은 확실한 피아식별을 바탕으로 자신의 반대파에게는 강한 응징을 가하고, 자신의 충성파에게는 알음알음 실권을 쥐어주는 방식으로 힘을 키우고 세력을 장악해 왔다. 한때 이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로 거론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이 보여준 용인술의 사실상 ‘대척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24년 22대 총선에서 보여준 공천 논란은 이 같은 뒤끝 정치에 기반한 용인술을 잘 보여줬다. 실제‘조금박해’ 중 하나로 민주당의 혁신을 주도한다 평가 받았던 박용진 의원은 당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를 통보 받았다. 박 의원은 당시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이 비명계 의원들에게 붙이는 ‘수박’ 딱지 행위를 비판하는 등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으며 정치적 보복 행위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이후에도 이 대통령이 박용진 의원에게 보여준 뒤끝은 상당했다. 박 의원은 당시 정봉주 전 의원과 강북구 을 민주당 경선에서  맞붙어 정봉주에게 패한다. 다만 경선 결과 발표 후 사흘만에 정봉주의 각종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돼 박 의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길 뻔 했다. 반면 민주당은 노무현재단 이사 출신인 조수진 후보와의 재경선을 치르게 한다. 한번 찍히면 웬만해서는 기회를 주지 않는 이재명 대통령의 스타일이 다시한번 드러난 셈이다.  

재경선에서도 박 의원은 30%의 감점을 받는 반면 조수진 측은 여성 신인 후보로서 25% 가산점을 받아 조수진 측이 무난하게 승리한다. 박용진에게는 여기서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이 기회 또한 이재명 대통령은 앗아가며 박용진을 철저히 짓밟는다. 공천에서 승리한 조수진 후보가 각종 논란으로 강북을 후보에서 자진사퇴해, 차점자인 박용진 후보가 공천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반면 민주당은 한민수 대변인을 강북을 후보로 공천하며 이 대통령은 박용진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계속되는 박용진 탄압에, 박용진은 이 대통령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살아남는 방법을 택한다. 정치적 명분도 싸움도 ‘권력을 잔인하게 쓰는’ 이 대통령에게는 통하지 않은데다, 정적을 무릎꿇리기 위한 의지만 더욱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결국 고개를 숙인 셈이다. 실제 박용진은 누구보다 처절한 ‘굴욕의 시간’을 보낸 후 지난해 2월 이재명 당시 당 대표와 회동한 후 지난해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는 등 정지척 회생 기회를 얻게 된다.  

박용진 입장에서는 자신이 강북을 의원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만한 상황이 계속 연출됐지만, 이 대통령은 마치 ‘희망고문’을 하듯 상황을 끌고가며 박용진에게 끝끝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같은 뒤끝 때문에 박용진은 오히려 이재명에게 충성서약을 하게 되고, 이 대통령 주위에서도 결국 이 대통령에게는 무조건 굽히는 것이 이득이라는 상황판단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용진이 중앙정치에서 가졌던 무게감을 생각하면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전략적 짓밟기’는 주위에 확실한 시그널을 줬고, 결국 이 대통령은 이후 대선에 승리하며 자신의 용인술이 옳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로마 내전 당시 세르빌리아의 처세술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폼페이우스 같은 이들이 권력자가 될 경우 사회적으로는 보복정치가 횡행하고, 다양한 의견이 묵살되는 전체주의 형태로 사회가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회의 발전 및 사회구성원 전체의 행복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뒤끝 강하고 권력의지가 넘치며 정실정치에 능한 이들이 정권을 잡은 결과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비롯해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현재의 북한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중인 미국 또한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권력의지가 강한데 뒤끝까지 있는 이가 권력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 세르빌리아와 같은 선택이 우월전략이라는 점은 모두에게 불행하다. 다만 요즘 같이 ‘스트롱맨’이 글로벌 정세와 사회 전반을 장악한 상황에서, 인품이나 교양 측면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권력을 잡을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정화 기제’의 작동은 요원해 보인다. 결국 현 글로벌 정치 체제는 도덕의식이나 염치가 상대적으로 결여된 이 같은 스트롱맨에게 유리한 판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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