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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의 서재
  • 일베의 사상
  • 박가분
  • 11,700원 (10%650)
  • 2013-10-30
  • : 485

 

논픽션의 글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픽션의 경우라면 다르다. 좋은 픽션을 쓰기 위해 습작을 하는 대다수 작가들이 경험하는 품평회라든지 워크샵이라든지 하는 모임에서는 많은 말들이 오가기 마련이다. 주로 발전을 위한 쓴소리들이다. 그리고 그런 종류 쓴소리라면 어느 정도 도가 텄다 할만한 나다. 내가 대단한 양질의 쓴소리를 해준다는 게 아니다. 픽션은 방향부터가 명확하다. 꾸며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고 들을만한 구석이 있으면 된다. 그 구석이란 재미일 수도 있고, 의미일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엔 대단히 숙련됐거나 신선해서 심미적으로 눈길을 끌만한 형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쓴소리의 기준은, 이 이야기가 과연 사람들이 잉여의 시간을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짓말인가, 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논픽션의 경우는 어떠할까?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이 책이 잘 된 책인지 덜 된 책인지 못 된 책인지를 판단한단 말인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마이 리뷰'에 올릴 책에 관한 글들은, 이처럼 내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내가 헤매고 넘어지고 하는 모습들이, 나처럼 처음 시작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내가 <일베의 사상>이란 책에 대해 약간의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에 꽤 충실하게 쓰여진 책인 것 같다. 애초에 책을 고르면서 기대했던 바에 어긋나지 않는 내용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말이다. 로쟈의 서재에서는 <일베의 사상>을 소개하며 필자의 경향신문 인터뷰를 링크해주었는데, 그곳에선 책의 제목을 본래 '일베의 생각'이라 하려 했지만 보다 "들여다보기" (내가 이해하기론 이러한 뜻이었던 것 같다) 위해 '일베의 사상'이라 고쳐썼다는 말이 나온다. 나 역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이 '사상'이라는 단어에 호기심 반 혐오 반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엔, '일베의 생각'이라는 것이 일종의 '사상'이라 불릴만 하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 날  사람들이 쓰는 '사상'이라는 단어의 범주에 대해서도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경우, '사상'이라 하면, 러시아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세상에 유일무이하며 대체불가능한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들이 어떤 '사상'에 사로잡힌 채 주로 범죄나 사기를 저지르거나 , 술이나 도박 등의 유혹에 빠지거나, 허무맹랑한 소극을 벌이기도 한다. 어쨌든 내 머릿 속 '사상'이란 두 글자 단어에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개인화된 이미지가 입혀져 있고, 대개 끝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더해져 있기도 하다. 대학 시절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데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개인의 파국을 상상하는 직업병 같은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국문학도나 사회학도라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러한 개인적 감수성 때문인지, '일베의 사상'이란 제목을 더욱 재미있고 의미있게 느낀 것 같다.

 

필자는 제목 뿐 아니라 책의 구성과 문체 면에서도, '일베의 사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충실한 기획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1부에서는 오늘날 일베의 사회활동(?)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인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고, 어떠한 배경에서 탄생하여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일베가 되었는지 나름 운명적이라 할만한 게시판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2부에서는 '일베의 사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너도 나도 우린 다 병신이다'라는 혐오주의라든지, '팩트'에 대한 집착이라든지, 이러한 문화의 기반에 자리한 냉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마치 한 권의 문화인류학 책에서 흥미로운 식인 부족을 만난 것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게 쉽게 쓰여져 있다. 쉽게 쓰여져 있다 함은, 가볍게 혹은 얕게 쓰여져 있다는 뜻이 아니고, 어떤 사회학적 용어라든지 인류학적 용어(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를 공유하지 못한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보통의 한국어로 쓰여져 있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보통의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와 일베의 '미학'을 비교해보는 2부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마지막 3부에서 필자는 일단 인터넷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기존에 사회학에서 논의돼 오던 공론장과 어떠한 점에서 같고 다른지 기존 논의들을 압축해 설명한 뒤, 한국 정치 역사에서 일베라는 특수한 존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일종의 자기 주장을 펼친다. 필자로서 상당한 도전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촛불시위'의 전향으로서 일베를 파악하고 있는 견해가 이 책에서 처음 제기된 필자만의 주장인지 아니면 기존에 논의돼 오던 담론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만해도 상당한 이야기거리를 양산할 만한 문제제기라고 생각된다. 필자 역시 이러한 점을 의식했는지, 유독 3부에 오면 실은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주장을 뒤엎거나 교차시키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얼핏 보면 좀 횡설수설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이 아니고서 달리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있을까. 만약 '촛불'과 '일베'의 연관성에 대한 필자의 주장에 굳이 별점을 매겨야 한다면, 그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논리적으로 따지기에 앞서, 그것이 이러한 현상에 대한 숙고와 토론의 필요를 상기시키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쓰여졌는가를 먼저 따져봐야 할 거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일베를 견디기 위해 우리들 스스로가 '환멸'을 견딜 수 있는, 상상 속의 이상 국가가 아닌 우리 사회의, 우리 주위의 공동체를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는 맺음말 부분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글자 단어를 느꼈다. '젊음.' 

냉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그런 에너지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고, 더불어 이런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다. '환멸'이라는 것은 매우 적절한 단어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슴 속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베 게시판에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이 조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고, 그런 식으로 내 안의 "일베 같은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책은 지나치게 원론적인 이야기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필자의 태도가 게으르거나 얼버무리는 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우리 사회가, 특히 대다수 젊은이들이 정치와 사회에 대한 진지한 방향 설정과 참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마음을 걸었다 상처받는 일 따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진지한 '가능성'의 담론에 대해 일종의 마비 혹은 마취 상태인 것도 같다. 이 책은 이런 현 상태에 대해 진단하고 치료의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로 끝맺음되고 있다고 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 <일베의 사상>은 < (우리 안에도 있을지 모르는) 일베의 사상>에 가깝다 하겠다. 이런 면에서 일베라는 타자, 혹은 괴물의 파렴치하고 위험한 행위들을 낱낱이 밝히고 단죄하며 처벌을 주장하는 식의 글쓰기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겐 도리어 역방향의 '환멸'을 안겨줄만한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필자가 제시한 방향의 공동체를 찾아가는 개인이나 사회의 구체적 이야기들을 또 한권의 책으로 엮어 내주길 바라보기도 한다. 그것이야 말로 '환멸'을 견디는 글쓰기의 방식이 아닐까.

 

이런 종류의 글을 쓰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느낀다. 잘 모르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읽고 말할 것인지의 방법론을 찾을 때까지, 나 역시 환멸을 견디며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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