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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는 '강원도의 힘'  이후로 보지 않았다.   뒤로 나온 두 편의 영화  '오 수정'과 '생활의 발견'을 소개하는 글을 몇 편 찾아 읽었더니 역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된 몇 개의 에피소드들이 의미가 좀 다른 스포일러가 되어, 뭔가 견디지 못하리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 어떤 이미지들에 아주 쉽게 들리는 내게 홍상수 영화의 몇몇 이미지들은 좀 과장하면 '앓을만큼'  지독하기 때문이다.

 더 과장하면 제자리에서 팔딱팔딱 뛰다가 숨을 헉헉 몰아 쉬고 그 영화를 보기 이전의 상태인듯이 ' 혼자 연기를 한다' .생쑈가 다른 게 아니다. 성철스님 말씀을 좇아 不欺自心 하기로 한 마당에 이런 쇼를 하다니.

 그런데 그의 새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곧 개봉된다고 한다. 이 영화를 봐야 할 것인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본다면 누구와 봐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친하게 지내는 혹자는 친절히 일러 주기를,  야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같이 보는 상대를 주의깊게 골라야 한다고 했다.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목석이 아닌 담에야 생리적으로 짤없는'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상대에게 들릴 수 있으므로.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 어쩌구 하는 최첨단 음향시설을 갖추어 숨소리까지 텅텅 소리를 내며 복원되는 영화관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자기는 숱하게 들었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 그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크게 들린다고 한다.) 화면의 빛이 목에 반사되어 그 명암까지 함께 '꿀꺽' 출렁거리면 그렇게 추한 모습이 없다는 일침까지 곁들인 살뜰한 충고.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다시 홍상수 영화를 봐야한다면  적당히 낯선 사람과 봐야 한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주 잘 알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사람도 아닌 사람. 영화를 보고 나와서 영화 얘기도 아주 일상적인 수다도 아닌, 그렇다고 너무 불편하지도 않고 너무 익숙해서 판에 박히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종의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안 떨 수도 있는 사람. 영화 얘기를 하는 듯 현실의 이야기를 하는 듯 구분이 가지 않을만한 거리의 사람. 그래 좋다. 헌데 대체 이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그리고 이 낯선 이 곁에서 그 추하다는 '꼴깍'을 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도 고민인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는 유지태의 베드신이 있다는 결정적인 소식까지 들려온다.앞의 충고와 뒤의 뜬금없는 고정관념 사이에서 유지태 팬인 나는, 드디어 황망해졌다.
 
 나의 갈 길은 몇 가지.
어딘가에 있을 그 적당히 낯선 이를 성공적으로 찾아내어 들키지 않으며  꼴깍한다. 가장 이상적. 안 되면?  목석이 된다.
(차라리 유체이탈을 하는 편이 쉽겠다.)  

 고로 나의 딜레마를 최종정리하면, 어디에 있는 지 모를 그 적당히 낯선 이를 찾아내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를 같이 보자고 청하여 승낙을 얻은 후에 만나서 나란히 영화관에 앉아서 유지태 -성현아의 베드신을 보면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꼴깍해야 하는 것. 갈 길이 험하고 멀다.

 때는 춘사월, 꽃 피고 새 우는 이 환한 봄날,
나는 왜 이 메주 덩어리를 머리 속에 넣고 사서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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